울산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가운데 등재 일주일 만에 수몰되는 일이 벌어졌다. 반구대 암각화는 지난 12일 세계유산에 17번째로 이름을 올린 '반구천의 암각화' 가운데 하나다. 고래사냥, 활쏘기, 추상 문양, 신라 시대 명문 등 한반도 선사시대부터 신라 시대까지 수천 년의 흔적을 단일 공간에 집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일 오전 9시 기준 한국수자원공사가 운영하는 물정보포털을 보면 울주군 사연댐 수위는 56.19m를 기록했다. 이에 가로 8m, 세로 4.5m가량(주 암면 기준) 크기인 반구대 암각화 상당 부분이 물에 잠기고 말았다. 사연댐은 반구대 암각화를 기준으로 대곡천을 따라 약 4.5㎞ 상류 지점에 있는데, 수위 조절용 수문이 없는 자연 월류형 댐이어서 큰비로 댐 저수지가 가득 차면 곧장 상류 암각화까지 영향을 미친다. 댐 만수위 표고가 해발 60m인데, 암각화는 53∼57m에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울주군 지역을 중심으로 국지성 호우가 집중됐다. ▲지난 13일 117.8㎜ ▲14일 59㎜ ▲17일 123.2㎜ 등 많은 비가 내렸다. 이 때문에 12일 46.96m이던 수위는 15일 49.48m까지 급속도로 올랐다. 비가 주춤하면서 수위도 소폭 하강하는 듯 보였으나 18일부터 이틀 동안 100㎜가 넘는 비가 내리면서 암각화가 수몰된 것이다.
평소 수자원공사는 사연댐에서 천상정수장으로 보내는 생활용수를 꾸준히 방류해 댐 수위를 낮게 유지하고 비가 예보되면 공업용수까지 추가로 방류한다. 그러나 이번처럼 많은 비가 한꺼번에 내리면 댐 유입량이 방류량을 크게 웃돌아 댐 수위가 높아진 채로 유지될 수밖에 없다. 19일 오후까지 50㎜ 이상 비가 더 예보된 상태여서 댐 수위가 계속 오를 뿐 아니라, 다시 수위가 낮아질 때까지 적잖은 시일이 걸릴 가능성도 있다. 그동안 세계유산 반구대 암각화는 수몰된 채로 있어야 한다.
이번 침수 전에는 2023년 장마와 태풍의 영향으로 8월 10일부터 10월 22일까지 총 74일간 반구대 암각화가 물에 잠겼다. 2014~2023년엔 연평균 42일 물에 잠겨있었다. 수자원공사가 적극적으로 수위 조절을 하기 전인 2005~2013년엔 침수 기간이 연평균 151일에 달했다.
2021년 암각화 훼손으로 이어지는 침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댐 여수로(댐 수위가 일정량 이상일 때 여분의 물을 방류하는 보조 수로)에 수문을 만드는 계획을 세웠다. 너비 15m, 높이 7.3m의 수문 3개를 설치하면 댐 수위를 암각화보다 낮은 52m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 제반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돼 내년 하반기에 착공하면 2030년께 준공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때까지 또다시 폭우가 내린다면 침수가 반복되면서 암각화가 지금보다 더 심하게 훼손될 수 있어 보존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편 울산 지역에는 집중 호우로 인한 침수 피해가 잇따랐다. 울주군 언양읍 반천리 일대는 일부 도로가 완전히 물에 잠겨 주차된 차량 10여대가 지붕까지 침수됐다. 울주군 언양 곰재1길 주택 창고에서는 토사가 흘러나와 군에서 현장 정리에 나섰고 울주 범서 은월암에서는 산사태로 여성 1명이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다.
울산 태화강 태화교와 중구 동천 번영교에는 홍수주의보가 발령됐으며 태화강 상류인 사연교에는 홍수경보가 내려졌다. 울산시는 이날 오전 3시 50분부터 비상 2단계 근무에 들어갔으며, 구·군을 포함해 200여 명이 비상근무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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