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 규제 완화 '극약처방'해야 지방 부동산 회복[건설위기 보고서]

<2-2> 세금이 발목
고가 1주택보다 세금 더 내는 지방 다주택자
"지방 침체, 수요자 발묶은 규제부터 풀어야"
"단기 처방 넘어 지속가능한 산업 전환 필요"

"건설업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방 부동산 시장에 온기가 돌아야 한다. 분양 시장에 사람이 모이면 건설사는 실적을 확보한다. 건설사에 돈이 돌면 금융권의 자금 지원에 대한 부담도 사라진다. 자금을 확보한 건설사는 새로운 캐시카우를 찾아 나서게 되고, 인력을 대거 투입해 새로운 사업에 투자한다. 하도급 업체부터 일용직 근로자까지 먹거리를 확보하게 되면 소비가 일어나고 나라 경제에 힘이 된다."


건설업계가 말하는 경기 선순환의 예다. 이런 효과를 일으키려면 지방에 집을 사려는 수요가 생겨야 한다. 걸림돌로는 세제가 꼽힌다. 서울에 고가 1주택자보다 자산이 적은 지방 다주택자가 더 높은 세 부담을 지는 현 세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극약처방 없인 회복 불가"…다주택자 규제 완화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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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근용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업계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정책금융상품을 확대하고, 자금이 신속하게 현장에 투입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29일 말했다. 이무송 대한건설협회 신사업실장도 "인구 감소와 가구 수 정체 국면에서 현행 규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라며 "지방 미분양 주택에 대해 양도세나 취득세 중과 배제가 일부 적용되나 여전히 세율 자체가 너무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2~3개 주택을 보유한 이들이 지방 주택을 추가 매입할 유인이 없다"며 "다주택자 규제만 풀어도 지방 미분양은 빠르게 해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주택자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는 조세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 연구진에 의뢰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주택 수를 기준으로 과세가 이뤄지면서 서울 고가주택을 소유한 1주택자보다 자산이 적은 지방 다주택자의 세금 부담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현행 제도는 조세 형평성을 훼손하고 조세 회피를 유도하는 측면이 있다"며 "세율은 주택 수가 아니라 양도차익이나 자산 총액을 기준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구체적인 세제 완화 방안도 나와 있다. 지방 미분양 주택에 한해 취득세 50% 감면과 양도세 5년간 전액 면제를 적용하자는 것이다.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2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지방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일각에서는 세제 개편과 함께 대출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계 대출을 제한한 6·27 대출 규제로 인해 자금을 수혈할 통로가 막힌 이상 수요가 살아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 시행사 임원은 "세제 혜택을 줘도 자금 조달이 막혀 있어 실질 효과는 크지 않다"며 "세제 완화와 대출 규제 완화가 함께 이뤄져야 시장 반응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기준금리를 인하해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 김태준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신성장전략연구실장의 경우 "현금 흐름을 회복하려면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며 "지금과 같은 고금리 환경에서는 민간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의 수익성이 맞지 않아 착공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최소 5~10% 수익률이 나야 PF 사업이 가능하지만, 현재 조달금리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주택만으론 부족…산업시설 유치로 민간 수요 확충해야"

중장기적으로는 주택 공급 외에도 산업시설 유치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지방에 일자리를 만들어야 주택도 공급할 수 있고 지역 경제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전영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미래산업정책연구실장은 "과거에는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처럼 대규모 산업시설이 국내에 조성됐지만 최근에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온쇼어링 정책 등으로 국내가 아닌 해외에 직접 짓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이로 인해 국내 민간 건설 수요가 점차 위축되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그는 "주택 공급 확대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산업시설 유치를 위한 세제 감면, 부지 제공, 인허가 절차 간소화 등의 전방위적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민간공사가 전체 건설시장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지만 정부 정책은 여전히 공공공사 중심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실제로 지난해 3월 이후 정부가 수차례 발표한 건설산업 활성화 대책 대부분이 공공 부문에 집중돼 있어 민간 부문에 대한 실질적 지원책은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전 실장은 "지방 미분양 해소나 PF 부실 대응 같은 단기 처방 외에도 민간 활력을 되살릴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사비 리스크 분산을 위한 계약 제도 개선도 주요 과제로 꼽힌다. 공공공사는 물가 변동을 반영한 계약금 조정 제도가 자리 잡고 있지만, 민간 부문은 여전히 '변동 배제 특약'이 일반적이다. 전 실장은 "물가 연동 기준이나 표준계약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건설사가 일방적으로 비용 부담을 지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시내의 한 건설 현장 모습. 연합뉴스

서울 시내의 한 건설 현장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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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보다 많은 건설사…구조적 산업전환 필요"

정부는 건설산업 위기를 단순히 유동성 문제로만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이제는 건설업도 바뀌어야 한다는 데 사회적 공감부터 이끌어야 한다"며 "성장 위주 산업에서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체질을 전환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건설업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크지만 선진국처럼 점차 줄어드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며 "기존 사업과 시스템이 성장기에 맞춰 설계된 것이라면 지금은 시장과 국민 눈높이에 맞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국토부는 개별 기업을 직접 지원하는 데는 사실상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정부 입장에서는 건설사 하나하나를 직접 살리기보다는 법정관리 시 협력업체나 수분양자 보호 등 2차 피해를 줄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건설사들 옥석 가리기가 우선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은 생존 가능한 기업과 자연 퇴출당할 기업을 구분할 시점"이라며 "건설업체 수 자체가 지나치게 많다"고 했다.


이 연구위원은 "종합건설사와 전문건설업체를 합치면 2023년 기준 8만개가 넘고, 이는 전국 편의점 수(5만5580개)보다 많다"며 "경기 상황에 따라 위기는 반복됐고 그때마다 우량 기업 중심으로 업계가 재편돼 왔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고 했다. 이어 "막연한 비관론보다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을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건설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보다는 경제 전반 균형과 회복력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명수 가톨릭대 교수는 "건설업은 고용 유발 효과가 가장 크고 경기 선행 지표로서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며 "경기 회복 국면에서 건설업 역할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건설위기 보고서' 글 싣는 순서
<1-1> 공사 멈춘 건설현장, 무너진 일용직 삶
<1-2> "3~4곳 추가 부도"…정리대상 된 중견 건설사
<2-1> '돈줄'인줄 알았는데 '덫줄'된 PF
<2-2> 다주택 규제 완화, 지방 부동산 회복 열쇠
<3-1> "하루하루 피 말라" 흔들리는 하청·후방업계
<3-2> 대형사도 못 피한 임금체불
<3-3> LH·지자체도 임금체불
<3-4> 대통령도 나섰다…수직 구조 개혁 시급
<3-5> 불법 재하도급 없이 버틴 이 회사
<3-6> 무너진 현장에서 손잡았다
<4-1> 외국인 건설인력, 내국인 일자리 잠식
<4-2> '외국인 규제' 아닌 '내국인 보호'로
<4-3> 채산성 악화 근본 원인 '잦은 재시공'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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