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7 대출 규제가 주택 공급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수분양자의 대출 한도를 6억원으로 묶어놨는데, 서울에서 사실상 분양을 받지 말라는 얘기 아니냐며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서울 민간아파트 3.3㎡당 분양가(주택도시보증공사)는 4568만원이다. 전용 84㎡ 아파트 분양가는 15억원을 훌쩍 넘는다. 6억원을 대출로 충당한다고 해도, 최소 9억원 이상 현금이 있어야 분양받을 수 있다. 부모 찬스를 쓸 수 있거나 로또에 맞으면 모를까 선뜻 내 집 마련에 나서기는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청약 수요가 줄면 분양가를 내려야 한다. 그런데 치솟는 물가에 공사비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공사비가 줄지 않으니 분양가도 낮출 수 없다. 분양사업의 성패에 생존 여부가 달린 건설사들은 공급을 최대한 미루는 것이 가장 현명한 판단이 됐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규제 발표 이후 분양 일정을 전면 조정하기로 했다. 내년으로 미룰 계획"이라고 답했다. 주택산업연구원도 "대출 규제 강화가 올해 하반기 아파트 분양시장에 미칠 영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전망했다.
분양 일정만 뒤로 밀리는 것이 아니다.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장들도 이번 대출 규제로 우왕좌왕하고 있다. 담보인정비율(LTV) 50%까지 나왔던 이주비 대출 한도가 주택담보대출(주담대)과 같이 6억원에 묶였다. 각 정비사업장에서는 자금 조달이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시공사가 추가 이주비를 대주는 방안이 있다. 그러나 시공사가 신용보강을 하게 되면 부채가 늘고 이는 건설사 실적과 자금 조달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런 어려움에 부닥친 서울 시내 정비사업장은 약 53곳으로 추산된다. 가구 수로 따지면 약 5만가구가 공급 중단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국토교통부가 오죽하면 대출 규제를 내놓기 전 '주택 공급이 우려된다'는 의견을 금융위원회에 전달했을까 싶다.
주택 공급 갈증을 일거에 해소할 특단의 대책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수치상 공급 갈증은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주택 착공 실적은 2021년 58만가구를 기점으로 절반(4년 평균 38만가구) 가까이 줄었다. 2023년의 경우 24만가구 정도 착공했다. 착공부터 준공까지 3년이 걸린다고 보면 내년 주택 공급량 자체는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집값을 잡을 필요도, 새 정부의 강력한 정책 기조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집값을 잡겠다고 공급까지 막아서는 것은 자충수다. 집값 상승의 근본 원인인 공급 부족을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추긴다면 집값은 다시 오를 수밖에 없다.
대외적 환경도 녹록지 않다. 한국은행은 금리를 인하할 시기를 엿보고 있고, 정부는 내수 진작을 위해 최근 31조8000억원의 추경을 편성하고, 3개월 내 88%를 집행할 계획이다. 돈을 풀면 부동산 시장에 몰린다. "경기 살리기라는 명목하에 통화량을 시중에 공급하게 되면 부동산 가격을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고 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최근 발언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집값 상승세가 주춤한다고 안도할 때가 아니다. 집값을 잡지 못했던 과거 진보 정권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집값 상승의 근본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 확실한 공급 대책을 하루라도 빨리 내놔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도 "집값은 억지로 누르면 반드시 튀어 오른다"고 밝히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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