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치명적 잘못은 문제 외면" CEO 질타…'핀셋 쇄신' 주문

롯데 2025 하반기 VCM(옛 사장단 회의)
그룹사 사장단에 무거운 책임감 요구
대내외 불확실성 고려 첫 1박2일 회의로 확대
경영환경 극복 위한 본원적 경쟁력 회복 주문
도전적 조직문화 수립·AI 적극 활용도 당부

"기업 경영에서 치명적인 잘못은 문제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하거나, 문제를 문제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최고경영자(CEO)는 5년, 10년 뒤의 경영환경 변화를 예측하고 현재와 3년 뒤에 해야 할 일을 계획해야 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롯데 제공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롯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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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6~17일 롯데인재개발원 오산캠퍼스에서 열린 '2025 하반기 롯데 VCM(Value Creation Meeting·옛 사장단 회의)'에서 "급변하고 있는 시대에 변화하지 않는 것은 위험하다"며 주요 계열사 사장단의 소극적인 태도를 질타하고, 강도 높은 쇄신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브랜드 가치 제고 ▲사업군별 전략 추진 가속화 ▲생산성 향상 등 그룹의 본원적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CEO들이 실행해야 할 하반기 경영 방침도 제시했다.

신 회장 주재로 열린 이번 회의는 장남인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부사장)을 비롯해 롯데지주 대표이사 및 실장, 사업군 총괄대표와 계열사 대표 등 80여명이 참석했다. 신 회장은 올해 상반기 그룹 실적을 냉정하게 평가하면서 모든 CEO에게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업무에 임해달라"고 요구했다.


롯데 VCM은 매년 상반기(1월)와 하반기(7월) 두 차례 열린다. 상반기 회의에서는 전년 경영성과를 돌아보고 당해 경영 목표를 공유한다. 하반기에는 상반기 경영 실적을 점검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하반기 세부 방침을 공유한다.


그동안 롯데 VCM은 당일 일정으로 이뤄졌지만,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이틀간 진행했다. VCM이 1박2일 일정으로 개최된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대내외 경영 환경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회의는 시종일관 엄중하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신 회장은 지난해 말 그룹을 둘러싼 유동성 위기설이 불거진 뒤 올해 신년사를 통해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더욱 강도 높은 쇄신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상반기 VCM에서는 "그룹이 가진 자산을 '선택과 집중'을 통해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현재 그룹이 놓인 어려움을 타파하고 대혁신의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럼에도 주요 그룹사가 실행 중인 쇄신안이 여전히 미흡하다고 판단하고 사장단에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과 발 빠른 대응을 촉구한 것으로 보인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롯데인재개발원 오산캠퍼스에서 열린 2025 하반기 VCM(Value Creation Meeting·옛 사장단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롯데그룹 제공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롯데인재개발원 오산캠퍼스에서 열린 2025 하반기 VCM(Value Creation Meeting·옛 사장단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롯데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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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회장은 사업군별로 추진하고 있는 전략에도 속도를 높여야 한다며 구체적인 과제를 던졌다. 세부적으로 롯데케미칼 , 롯데정밀화학 ,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등 화학군에는 신속한 사업 체질 개선을 요구했다. 그룹 캐시카우(수익창출원) 역할을 했던 롯데케미칼이 글로벌 석유화학 산업의 불황으로 6개 분기 연속 적자를 낸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3개 신용평가사는 지난달 말 롯데케미칼의 신용 등급을 내렸고, 이 여파로 롯데지주의 등급도 하향 조정됐다.


롯데케미칼은 전반적으로 사업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올해 파키스탄 고순도테레프탈산 생산·판매 자회사, 인도네시아 자회사, 일본 소재기업 레조낙 지분 등을 매각하거나 유동화했다. 비핵심 사업 구조조정을 위해 최근 대구 국가물산업클러스터에 위치한 수처리 사업도 매각하기로 했다.


롯데웰푸드 롯데칠성 음료, 롯데GRS 등 식품군에는 핵심 제품의 브랜드 강화를 강조했다. 신 회장은 "브랜드는 우리 사업 경쟁력의 근간이자, 오랜 기간 축적해온 중요한 가치"라고 짚었다. 이 밖에 백화점과 마트·슈퍼, 이커머스, 홈쇼핑 등 유통군은 다양한 고객 니즈를 충족 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구체적인 전략으로 'PEST' 관점 경영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PEST는 기업의 외부 환경을 정치적(Political), 경제적(Economic), 사회적(Social), 기술적(Technological) 요소 중심으로 분석하는 도구로, 거시적 환경 요인들이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이다. 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직원들의 직무 전문성을 강화하고 성과 중심의 인사체계가 정착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도전적인 조직문화를 장려하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인공지능(AI)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신 회장은 "경영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우리에게 리스크와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며 선제적인 관리를 주문했다. 이어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실패와 같다"며 "본업 안에서 끊임없는 혁신을 시도하고, 그룹의 미래를 위해 모두 저와 함께 앞장서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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