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왕국' 폴란드, 갈탄 광산은 공원으로…갈등 해소에 정의로운 전환 기금 활용③

[정의로운 전환의 길]
Ⅱ.탈석탄 과정서 갈등 해소, 어떻게 가능했나
광산은 공원으로, 발전소는 문화공간으로 변모
EU 정의로운 전환 기금 적극 활용

편집자주산업혁명 발상지 영국은 2024년 가을 마지막 남은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면서 142년 석탄발전 역사를 마감했다. 프랑스는 2027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전체를 폐쇄할 계획이다. 유럽 최대 석탄 생산국 폴란드도 최근 탈석탄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선택한 탈석탄 정책이 일자리 감소와 지역 소멸로 연결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영국·프랑스·폴란드 정부와 기업은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탈석탄 과정에서 생긴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전환의 성공 사례를 취재했다.

'유럽의 석탄 왕국'으로 불리던 폴란드에도 정의로운 전환의 바람이 불고 있다. 폴란드 정부는 204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을 중단하고 2049년까지 모든 석탄 광산을 폐쇄하기로 했다. 2019년 72%였던 석탄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56% 이하로 낮춘다는 목표를 담은 에너지 정책(PEP 2040)을 추진 중이다.


폴란드의 정의로운 전환 추진상황을 살피기 위해 지난달 24일 비엘코폴스키에주 코닌시 외곽에 있는 '몰타 클레체프스카(Malta Kleczewska)' 공원을 찾았다. 코닌시는 수도 바르샤바에서 동쪽으로 220㎞ 떨어진 곳에 있는 소도시다.

지난달 24일 찾은 폴란드 코닌시의 '몰타 클레체프스카' 공원 전경. 과거 갈탄을 채굴하며 만들어진 깊이 40m의 웅덩이를 저수지로 새롭게 조성했다. 주상돈 기자

지난달 24일 찾은 폴란드 코닌시의 '몰타 클레체프스카' 공원 전경. 과거 갈탄을 채굴하며 만들어진 깊이 40m의 웅덩이를 저수지로 새롭게 조성했다. 주상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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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지표 근처에서 채굴하는 석탄인 갈탄(갈색탄) 광산이 있었던 이곳은 현재 저수지를 포함한 녹지 공원으로 탈바꿈한 상태다. 갈탄은 땅을 파내는 방식으로 채굴하기 때문에 캐고 나면 거대한 웅덩이가 만들어진다. 갈탄 광산 운영사인 제팍은 깊이 40m에 달하는 이곳에 물을 채워 저수지를 만들고, 공원을 조성했다. 제팍 관계자는 "저기 오리 보세요. 자연호수 같지 않나요?"라며 "이 공원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수상레저 시설과 숙박, 상업시설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몰타 클레체프스카 공원은 과거 석탄 광산 광부들이 사용하던 탈의실을 호스텔로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공원 이용객들을 위한 음식점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제팍 관계자는 "이 근처에만 이 같은 갈탄 광산이 만든 웅덩이가 총 13곳"이라며 "다른 곳도 현재 재조림이 진행 중인데, 공원을 만들거나 인공호수를 중심으로 수십 동의 오두막 단지를 조성하는 휴양시설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팍이 운영하던 갈탄광산에서 석탄을 채굴하고 있는 돌로레이.(사진제공= 제팍)

제팍이 운영하던 갈탄광산에서 석탄을 채굴하고 있는 돌로레이.(사진제공= 제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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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곳에 달하던 광산이 이제 한 곳밖에 남지 않으면서 쓸모가 없어진 갈탄 채굴기인 돌로레이는 유휴 부지로 옮겨 놓은 상태다. 제팍은 코닌시 곳곳에서 갈탄을 캐던 채굴기인 '돌로레이'를 박물관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석탄산업 축소로 어려움 빠진 코닌시,  투자유치로 돌파구 마련

코닌시 석탄산업 종사자는 호황기 때 8000명에 달했지만 현재는 1200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파베우 아다무브 코닌시 부시장은 "코닌시에 총 3곳의 석탄발전소와 수십 곳의 석탄 광산이 있었지만, 지금은 석탄발전소 1기와 갈탄 광산 1곳만 운영되고 있다"며 "마지막 석탄발전소 1기도 2~3년 이내에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로 전환되고 광산도 조만간 폐쇄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4일 폴란드 코닌시청에서 파베우 아다무브 코닌시 부시장이 코닌시의 정의로운 전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주상돈 기자

지난달 24일 폴란드 코닌시청에서 파베우 아다무브 코닌시 부시장이 코닌시의 정의로운 전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주상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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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닌시는 석탄산업 축소로 실업률이 높아지고 지역경제가 어려움에 처하자 정의로운 전환에 정책 초점을 뒀다. 바르바라 마스테르낙 코닌시 비즈니스협력 매니저는 "한정된 예산 탓에 석탄발전소와 광산 폐쇄 등에 따른 정부 차원의 지원 프로그램이 부족했다"며 "그래서 유럽연합(EU)의 정의로운 전환기금을 통해 직업 전환교육과 창업지원, 투자유치 등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의로운 전환 과정에서 코닌시가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부분은 투자유치다. 석탄발전소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은 다른 지역의 석탄발전소로 일할 수 있도록 하거나 LNG 발전소 등으로 전환 배치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지역에 새로운 산업을 유치해 기존 석탄산업 종사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전략이다. 코닌시의 강점은 석탄산업을 위해 만들어진 교통과 송배전망 등이다. 바르바라 매니저는 "코닌시는 폴란드에서 중심에 위치한다는 지정학적인 강점이 있고, 종과 횡으로 고속도로가 다 지나간다"며 "투자 가능한 부지 30만㏊가 남아 있어 새 기업이 들어와서 공장을 지을 땅이 충분해 이 같은 강점을 바탕으로 투자유치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4일 폴란드 코닌시청에서 바르바라 마스테르낙 코닌시 비즈니스협력 매니저가 정의로운 전환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코닌시의 투자유치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주상돈 기자

지난달 24일 폴란드 코닌시청에서 바르바라 마스테르낙 코닌시 비즈니스협력 매니저가 정의로운 전환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코닌시의 투자유치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주상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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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닌시는 투자유치를 위해 120~150㏊ 단위의 산업특구를 조성하고 있다. 실제 폴란드 최대 캐비어 가공 공장 등 현지 기업은 물론 중국의 JS에너지 등 해외 기업들을 유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에만 이를 통해 300여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고 했다. 바르바라 매니저는 "지금도 제조업체 몇 곳과 구체적인 투자방안을 협의하고 있고 곧 이전이 확정될 것"이며 "이 같은 투자유치가 더 많아진다면 충분히 과거 석탄발전 호황기의 경제를 회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닌시는 기업 유치가 지역 내 일자리 증가로 이어지기 위한 교육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지역 내 대학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바르바라 매니저는 "시에 있는 포즈난공과대학 등 대학교 3곳과 협동 직업교육을 하고 있다"며 "시에서 대학에 예산을 지원해 특정 기업에서 필요한 인재의 교육을 하고 바로 해당 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각종 직업교육을 할 수 있는 실험실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닌시는 투자유치를 위한 주거시설 등 기반시설 조성에도 직접 나섰다. 파베우 부시장은 "시에서 투자유치를 위해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주거와 산림 공간 확보"라며 "이를 위해 시에서 직접투자도 하고 있고, 민간 디벨로퍼를 통한 주택사업도 진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바르바라 매니저는 한국 기업의 코닌시 투자도 요청했다. 그는 "코닌시는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기업의 투자를 희망하고 있다"며 "현재 한국과 중국기업의 전기차 투자를 모색 중인데 관심을 가져달라"라고 당부했다.

바르샤바 석탄 발전소가 휴식·쇼핑·오피스 공간으로

수도 바르샤바도 화력발전소를 쇼핑과 사무공간 등 상업시설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지난달 25일 찾은 옛 포비슬레 화력발전소는 평일 오후임에도 아이들과 식사하고 친구들과 차를 마시거나 쇼핑하는 방문객들과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장인들로 붐볐다. 이곳은 1904년부터 2001년까지 바르샤바 시민들에게 전력을 공급하던 석탄발전소가 있던 곳이다. 포비슬레에 위치한 한 카페 직원은 "이곳을 처음 찾는 사람들 다수는 예전에 석탄발전소가 있었던 것을 모를 만큼 현재는 현대적인 문화·상업 공간으로 탈바꿈했다"며 "곳곳에 발전소 안내판과 남겨진 굴뚝을 보고는 그때야 과거에 발전소였던 것을 알게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5일 찾은 폴란드 바르샤바에 위치한 포비슬레 상업단지. 과거 석탄발전소에서 사용하던 굴뚝은 파노라마 엘리베이터로 사용하고 있다. 주상돈 기자

지난달 25일 찾은 폴란드 바르샤바에 위치한 포비슬레 상업단지. 과거 석탄발전소에서 사용하던 굴뚝은 파노라마 엘리베이터로 사용하고 있다. 주상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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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비슬레 곳곳에는 과거 석탄발전소 사진과 전기를 만드는 과정 등의 설명을 담은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또 석탄발전소에서 사용하던 굴뚝도 해체하지 않고 파노라마 엘리베이터로 활용하고, 석탄을 나르던 크레인과 석탄발전에 사용된 보일러 등도 그대로 살려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포비슬레에서 보안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보이텍씨(60)는 "어릴 적 포비슬레 발전소 근처에 살았는데 이렇게 상업공간으로 변할지 상상조차 못 했었다"며 "현재 포비슬레는 젊은 사람들에겐 문화와 휴식의 공간, 우리 같은 노년층에게는 추억의 장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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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닌(폴란드)=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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