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귀 트임'이라면 평생 고통받을 수도 있다. 본래는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리스닝을 위해 반복적으로 문장을 들어 귀에 익숙해지는 현상을 뜻한다. 층간소음으로 넘어오면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개월 동안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작은 소리도 들리게 되는 예민한 청각 상태를 일컫는다.
넷플릭스 영화 '84제곱미터'에서 우성(강하늘)은 귀 트임에 시달린다. 대출 규제를 앞두고 서둘러 집을 마련하는데, 층간소음으로 일상이 지옥으로 변한다. 소음의 진원지를 찾으려고 이웃집 문을 두드리지만, 돌아오는 답은 매번 같다. "우리 집은 아니에요." 오히려 주범으로 의심받아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김태준 감독은 우성이 귀 트임에 이르는 과정에서 칵테일파티 효과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칵테일파티 효과란 여러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이름이나 평소 관심 있는 이야기는 잘 들리는 현상을 의미한다. 층간소음 피해자들은 처음 소음으로 고통받으면 애써 무시하려고 TV를 보거나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다. 그런데도 소리와 진동이 멈추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조그만 발소리에도 귀를 쫑긋 세우게 된다. 신경이 예민해져 소리 나는 곳이 윗집 안방인지 거실인지, 뛰는 사람이 아이인지 성인인지까지 대략 파악하게 된다.
우성이 처한 상황은 이보다 더 심각하다. 날이 갈수록 신경은 날카로워지는데 좀처럼 소음의 진원지를 찾지 못한다. 정신 쇠약에 걸려 신경과민과 강박 현상이 동시에 나타난다. 특정한 소리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소포니아(misophonia) 증상도 보인다. 소음이 아니라 시계, 키보드 자판 타이핑 등 일반적인 소리에까지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렇게 드러나는 분노와 공포, 혐오, 돌발 행동에는 오늘날 청년들의 고통이 내재해 있다. 우성은 대출을 최대한으로 당기고 시골 논밭을 판 돈까지 탈탈 털어 아파트를 장만한다. 그는 만회를 위해 회사에서 퇴근하자마자 배달 아르바이트한다. 녹초가 되어 돌아온 집에서 에어컨도 켜지 않는다. 그러나 대출 상환은 여의찮고, 체력은 바닥이 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집값마저 내려가 정신적으로 병든다.
이 영화는 이런 악순환이 암호화폐, 투기 등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집이 삶의 공간보다 물질적 수단과 부의 축적으로 변질한 현실을 펼치고, 도시 빈곤층의 불합리한 욕망 구조를 낱낱이 들여다본다. 실제로 금리 인하기에 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한다는 '영끌족'이 나타나는 등 위험부담이 높은 투자를 감행하는 청년은 갈수록 늘고 있다. 하나같이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시대에 신분을 바꿀 유일한 수단으로 여긴다. 개인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계층 상승이 어려운 사회 구조, 자산 불평등 등이 주된 원인인 셈이다. 금융 규제, 교육, 고용 정책 등의 실패가 낳은 결과로, 마땅한 해결책도, 책임을 물을 대상도 보이지 않는다.
층간소음도 다르지 않다. 법적 기준은 모호하고, 실효성 있는 대응책은 없다시피 하다. '84제곱미터'에선 소음의 진원지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웃 간 갈등이 상호 비난으로 전이된다. 혼란이 가중하고 고립이 심화하면서 일상의 공공성, 나눔의 공동지대, 공동체의 회복 등은 무너져내린다.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실상은 추악한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