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부가 국가 재정과 생산성 향상을 고려해 공휴일을 이틀 폐지하자고 제안하자 야권과 노동계의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일인 5월8일을 공휴일에서 제외하겠다는 정부 발표에 파장이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는 1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를 인용,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가 이날 내년도 예산안 기조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국가 부채를 줄이겠다며 공공 지출 감소 및 생산성 확대 방안을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바이루 총리는 "지금 조치하지 않으면 그리스처럼 재정 위기를 겪을 수 있다"며 강도 높은 재정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포함한 다양한 긴축 조치를 제시했다. 퇴직 공무원의 3분의 1만 충원해 인건비를 줄이고 비효율적인 국가기관을 정비하겠다는 방침이다. 처방약 보조금 축소 등 사회보장 지출 조정과 의료비 지출 구조 개편도 포함됐다.
또한 해당 방안에는 지출 감소를 위해 국방 분야를 제외한 전 부처의 예산을 올해 수준에서 동결하고 생산성 확대를 위해선 연중 총 11일에 달하는 법정 공휴일 가운데 이틀을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폐지 대상 공휴일에는 부활절 월요일과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일인 5월8일이 꼽혔다. 프랑스 정부는 공휴일 이틀을 폐지함으로써 연간 약 6조7000억원(42억 유로)의 세수가 확보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에 야권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극우 국민연합(RN)의 장 필리프 탕기 의원은 16일 라디오 프랑스 앵테르에 출연해 "마크롱 정권이 7년의 집권 동안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일하게 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공휴일은 선물이나 공공 지출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조직 체계"라며 "국가의 예산 절감과는 상관이 없다"고 일갈했다.
특히 야권은 종전 기념일인 5월8일의 공휴일 제외를 '역사적 망각'이라며 반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날은 나치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하며 유럽 내 2차 세계대전이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 날로 프랑스에서는 희생자를 추모하고 자유의 가치를 되새기는 국가적 기념일로 자리 잡아 왔다.
극좌 정당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소속 토마 포르트 의원은 엑스(X·옛 트위터)에 "완전한 스캔들"이라고 비난했고 녹색당 마린 통들리에 대표도 엑스에 "나치즘에 대한 승리 기념일을 더 이상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겠다는데 이 제안을 정확히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라고 비판했다. 강성 노조인 노동총동맹(CGT)의 소피 비네 사무총장도 전날 AFP 통신에 "극우 세력이 권력의 문턱에 선 상황에서 총리가 나치에 맞서 승리한 날을 폐지하겠다고 한다"며 "이는 매우 심각한 일"이라고 우려했다.
이 같은 비판에 뱅자맹 아다드 유럽 담당 장관은 "드골 장군이 과거 5월8일을 공휴일에서 제외한 바 있다"며 역사적 선례가 있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프랑스는 1946년부터 5월8일을 기념했지만 공식 공휴일로 지정된 것은 5년 후였다. 1959년 드골 대통령 시절 경제적 이유로 폐지됐고 1975년에는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이 기념식 자체를 없앴다가 1981년 미테랑 대통령 시절에 다시 공휴일로 복원됐다.
정부는 야권의 반발이 거세자 공휴일 폐지 제안을 비롯해 내년도 예산안 기조와 관련해 모든 정당과 논의하겠다고 약속했다. 에리크 롱바르 재정경제부 장관은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정당들과 논의 과정에서 계획을 개선할 것"이라며 특히 의회의 불신임을 피하기 위해 그간 바이루 정부에 협력해 온 사회당의 지지를 끌어내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조치는 프랑스의 심각한 재정 상황을 반영한 긴축 성격의 예산 구상이다. 프랑스의 국가 부채는 현재 GDP 대비 114%로 유로존 평균을 크게 상회한다. 재정적자도 지난해 기준 GDP 대비 5.8%에 달하며 이는 유럽연합(EU)이 권고하는 3% 기준을 한참 초과한 수치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내년까지 적자를 4.6% 수준으로 낮추고 2029년까지 3% 이하로 줄인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