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정부, 첫 기본시리즈는 교통?… 교통기본법 논의 첫발

정부·여야, 교통기본법 제정 준비작업 착수
개헌 시 이동권 반영하는 방안도 검토
"교통, 국민이 보편적으로 누릴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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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이 교통기본법을 제정하기 위한 실무작업에 들어갔다. 도서산간지역에 사는 이들이나 장애인의 이동권을 기본적으로 보장하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과거에도 법 제정을 추진했으나 이해관계자 간 의견조율이 쉽지 않아 최종 불발됐다. 이번에는 정부나 정치권에서도 의욕을 갖고 추진하는 만큼 제정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당정 차원에서는 헌법을 개정하면서 이동권을 명문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동권이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받는다면 공적 차원에서 교통 서비스를 확충할 근거도 명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은 최근 본인의 저서 '기본사회'를 통해 국민이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서비스로 주거와 의료, 돌봄, 교육, 교통을 꼽았다.

17일 국회와 국토교통부 등 취재 결과,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하순 교통기본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윤 의원은 "복잡 다원화된 교통 관련 법령의 주요 내용을 통합해 '교통기본법'을 제정해 국민에 대한 교통서비스 개선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 교통의 기본법으로 다른 관련 법의 방향을 제시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연 '제17차 버스행동'에서 활동가들이 저상버스에 타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연 '제17차 버스행동'에서 활동가들이 저상버스에 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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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은 전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 소위에 상정됐으나 처리되지 않았다. 지난해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교통정책기본법도 당초 이날 같이 상정됐으나 다루지 못했다. 여야 간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니나, 다른 안건들의 논의가 길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여야가 제시한 제정안이 각론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공적 차원에서 교통 서비스를 강화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점에서 향후 여야간 협조가 어렵지 않은 상황이다.


이번 여당 발의안에는 교통체계 효율성을 위해 중장기 로드맵(20년 주기 기본계획, 5년 단위 실행계획)을 짜는 한편 소득·문화 수준 등을 가늠할 수 있는 '최저교통서비스 기준'을 마련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취약지역 등을 대상으로 교통서비스 개선대책을 의무화했고, 종사자나 이용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도 강제했다. 교통권 보장, 서비스 개선을 위한 명목으로 교통복지기금도 신설하는 내용도 반영했다. 정부 출연금을 비롯해 교통·에너지·환경세법에 따른 세입 결산분, 교통유발부담금, 복권수익금, 기부금 등을 재원으로 한다.

교통기본법 제정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 가운데 하나다. 2011년 정부 입법으로 추진한 것을 시작으로 여야에서도 여러 차례 발의안이 나왔다. 과거에 비해 교통수단이나 체계가 다양해지고 복지 수요가 늘면서 여러 법에 산재한 교통 관련 내용 전체를 한데 아우르는 기본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3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하던 중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관계자들을 만나 장애인복지법 관련 건의사항을 듣고 있다.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3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하던 중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관계자들을 만나 장애인복지법 관련 건의사항을 듣고 있다.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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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발적으로 발의됐지만 결국 법이 만들어지지 못한 건 일차적으로 재정 당국에서 부담을 가진 영향이 크다. 기본법이 마련되면 주기적으로 교통실태를 조사하는 것을 비롯해 일정 기준에 미달하는 지역, 집단 등에 대해서는 그에 걸맞은 지원을 의무조항으로 넣을 공산이 크다. 가뜩이나 지자체 차원의 교통부문 사회간접자본(SOC) 수요가 넘쳐나는데, 이를 더욱 적극 요구할 명분도 주는 모양새가 된다.


정부 관계자는 "10여년 전 주거를 기본권으로 삼아야 한다는 기조로 기본법을 만들었듯 교통 역시 기본권으로 삼아 공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다"면서도 "다만 예산이 수반되는 만큼 특정 부처 의지만으로 관철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예산 집행과 함께, 이해관계자 조율도 난관이 될 전망이다. 대표적인 것은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볼지 여부다. 택시는 현행 법령상 대중교통이 아닌데 이를 바꾼다면 지하철·버스처럼 일정한 예산 지원이 불가피하다. 기존 대중교통 종사자나 회사에서는 택시까지 지원범위를 넓힐 경우 지원 규모가 줄어들 것으로 예단해 꾸준히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를 감안한듯 택시를 '준대중교통'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산간·벽지 등 외부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에서 하는 수요맞춤형 공공택시, 장애인 등을 위한 콜택시 등에 관련 규제를 줄이고 지원책은 늘리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전북 정읍시가 도입한 농촌복지택시. 버스가 다니지 않는 지역주민을 위한 이동수단이다. 연합뉴스, 정읍시 제공

전북 정읍시가 도입한 농촌복지택시. 버스가 다니지 않는 지역주민을 위한 이동수단이다. 연합뉴스, 정읍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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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기 위해 개헌 시 이동권을 명시하는 방안도 여당 내부에서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최근 한국교통연구원을 찾아 이러한 구상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권은 독일·캐나다 등 일부 국가 헌법에 기본권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지만 우리 헌법에는 따로 없다. 그간 교통 전문가 사이에서는 이동권을 기본권으로 삼아 취약계층은 물론 시민 다수를 대상으로 교통복지를 보다 폭넓게 챙겨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교통기본법이 마련되면 예산이 소요되는 교통 관련 사업을 추진할 때 한결 수월해질 전망이다. 대중교통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마을택시의 경우 현재 해당 지자체 예산을 활용하는데 곧바로 국가 재정투입이 가능해진다.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된 데다 IT기술을 기반으로 복잡한 교통 서비스를 구현할 플랫폼이 보편화된 만큼, 과거에 비해 다양한 사업이나 프로그램을 구현하기 수월한 여건이 됐다.


다만 현재도 세수결손으로 예산이 부족한 터라 새로 기금을 만들어 교통복지를 챙기기 만만치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국토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법안 내용은 국회와 협의해가면서 최종 조율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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