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진해온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 하원에서의 첫 절차 표결에서 좌초되며 심의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비트코인 가격은 표결 실패에 따른 실망과 차익 실현 매물 출회가 겹치며 11만6000달러대까지 밀렸고 관련 기업 주가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다만 공화당 지도부가 조만간 재표결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입법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15일(현지시간) CNBC와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하원은 이날 가상자산 3법 심의 시작을 위한 절차적 표결(procedural floor vote)을 196대 222로 부결시켰다. 절차 표결은 법안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규칙을 만들기 위한 사전 단계 성격의 표결을 뜻한다. 이 단계가 통과돼야 법안의 심의와 표결이 가능하다.
하원은 이번 주를 크립토 위크(crypto week)로 정하고 3개의 가상자산 법안을 다룰 예정이었다. 3대 법안은 '지니어스 법안(스테이블코인 제도화)'과 '클래러티 법안(가상자산 시장 관할 정비)', 그리고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감시국가 방지 법안(소비자 금융 프라이버시 보호)'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내에서도 일부 이탈표가 나오면서 해당 법안은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 위한 절차 표결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몇몇 공화당 의원들이 민주당과 함께 3건의 가상자산 법안을 하나의 패키지로 처리하는 방식에 반대하며 반대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총 13명의 공화당 의원들이 반대표를 행사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표결이 이뤄지기 전 자신이 만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트루스소셜에 "오늘 오후 첫 번째 표결을 반드시 통과시켜라. 모든 공화당 의원은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고 당내 단결을 주문했다. CNBC는 "이번 법안은 통과가 유력한 것으로 관측돼 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하원 공화당이 이탈한 사례로 주목된다"고 보도했다.
다만 법안 통과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같은 날 "의원들과 계속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며 "조만간 다시 표결에 부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투자전문지 배런스는 스티브 스칼리스 공화당 원내대표가 법안을 조만간 다시 표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사실을 전하며 재표결이 향후 며칠 이내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다만 재표결이 성사되기 위해선 CBDC 금지 조항 포함 여부와 법안 병합 방안을 둘러싼 내부 협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표결 일정도 결정될 전망이다. 공화당 내 보수 강경파는 CBDC가 도입될 경우 정부가 미국 국민들의 금융 활동을 과도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며 CBDC 전면 금지를 포함하지 않는 한 지니어스 법안 표결에 협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해당 CBDC 금지 법안은 아직 상원에서는 논의된 바 없다. 미 연방준비제도(Fed) 역시 현재까지는 CBDC를 공식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구체적 계획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
법안 표결 실패 소식이 전해지자 비트코인 가격은 급락했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오후 8시37분(미 동부시간 기준) 비트코인은 11만6516달러까지 밀렸다. 비트코인은 전날 12만3000달러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가 기록을 다시 썼다. 표결 좌절 외에도 사상 최고가 돌파 이후 차익 실현 매물이 대거 출회되면서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코노믹타임스는 "시장 분석가들이 이번 하락의 원인으로 차익 실현 매물과 단기 과열에 따른 조정을 지목했다"고 설명했다.
법안이 하원 문턱을 넘지 못하자 가상자산 관련 기업 주가도 일제히 하락했다. 서클 주가는 4.58% 급락했고, 코인베이스는 1.52% 하락 마감했다. 비트코인 채굴업체인 라이엇 플랫폼스와 마라 홀딩스도 각각 3.28%, 2.3% 빠졌다. 이들 종목은 장 마감 이후 시간 외 거래에서도 추가 하락 압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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