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블랙베리 휴대폰이 최근 미국 Z세대 사이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복잡한 디지털 환경에 지친 Z세대들이 터치 스크린 대신 손으로 꾹꾹 눌러야 하는 물리 키패드를 탑재한 휴대폰에 매력을 느끼며 과거를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옛 색감을 구현하는 구형 아이폰이 인기를 얻고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Z세대를 중심으로 단종된 블랙베리 휴대폰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며 "블랙베리 시절을 그리워하는 젊은 이용자들이 틱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블랙베리의 재출시를 촉구하는 콘텐츠들을 잇달아 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들 중 상당수는 블랙베리가 전성기일 당시 휴대폰을 쓸 만큼 나이가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향수를 느낀다"고 덧붙였다.
블랙베리는 2000년대 중후반 인기를 끌었던 휴대폰 브랜드로, 화면 하단에 PC 키보드 배열과 같은 '쿼티 키보드'가 탑재된 게 특징이다. 실시간 이메일 확인과 일정 관리 기능, 강력한 보안성 덕분에 비즈니스폰으로 각광받았으며, 2012년에는 전 세계 이용자가 80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특히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애용해 '오바마폰'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갤럭시와 아이폰의 등장으로 스마트폰 시장이 본격화하면서, 물리 자판을 고수했던 블랙베리는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이후 구글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무료로 배포하자 다양한 제조사들이 터치스크린 기반 스마트폰을 내놓았고, 독자 운영체제를 고수하던 블랙베리는 경쟁에서 밀려났다. 결국 2022년 1월, 블랙베리는 공식적으로 휴대폰 서비스를 종료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미국 Z세대가 블랙베리에 관심을 갖는 것은 과거 디지털 기기들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으로 삼는 '노스탤지어 테크' 트렌드 확산과 관련이 있다. 노스탤지어 테크는 '향수(nostalgia)'와 '기술(tech)'이 결합한 용어로, 한때 유행했던 기기나 기술을 다시 사용하며 과거의 감성을 즐기는 소비문화를 뜻한다. 블랙베리를 비롯해 CD플레이어, 디지털카메라(디카), LP 등이 대표적인 예다.
작가 댄 카심(29)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2000~2010년대 사용했던 휴대폰들은 유년기나 사춘기의 추억과 연결돼 있어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며 "블랙베리 같은 옛날 폰에는 확실한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 간의 연결로 지쳐가는 요즘, 블랙베리처럼 단순한 기기들은 오히려 해방감을 준다. 당시 휴대폰은 삶의 중심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전자상거래 플랫폼 이베이에서 블랙베리 휴대폰을 검색하면 2500건 이상의 검색 결과 나올 정도로 수요는 꾸준하다. 광고업계에서 일하는 빅토리아 자니노(25)는 "어릴 적 TV에서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손에는 블랙베리를 들고 있던 어른들의 모습은 정말 멋져 보였다"며 "블랙베리 시절은 지금 생각해도 향수를 자극한다"고 회상했다.
국내에서도 젊은층을 중심으로 구형 휴대폰에 대한 인기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모델은 아이폰 SE 1세대다. 2016년 3월 출시된 이 제품은 작고 가벼운 디자인과 감성적인 사진 색감 덕분에, 출시 후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도 MZ세대 사이에서 '역주행' 인기를 얻고 있다.
아이폰 SE 1세대는 후면과 전면 카메라 화소가 각각 1200만, 700만화소에 불과해 4800만 화소인 최신 아이폰에 비해 화질이 떨어진다. 그러나 낮은 화질이 오히려 옛 감성을 살리는 요소로 작용하며 소비자 반응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e커머스 플랫폼 에이블리에서는 현재 아이폰 SE 1세대가 15만원대에 판매되고 있으며, 일부 판매자 페이지에서는 누적 판매량이 1만4000건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매자들은 "사진용으로 고민 중이라면 구매를 후회하진 않을 것", "옛 아이폰 특유의 감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디카 대신 구매했는데 만족스럽다", "원하는 색감이 잘 나오고, 아날로그 특유의 분위기가 좋다" 등의 긍정적인 후기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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