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기업 페레로 로쉐가 32년 전 광고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유럽의 고급스러운 초콜릿 맛을 미국에 제대로 알릴 수 있었을까. 1993년 미국·영국 등 영미권 국가에서 신드롬을 일으켰던 페레로 로쉐의 TV 광고는 너무나 낮은 품질로 당시엔 조롱거리였지만, 오히려 제품 이미지를 소비자 기억 속에 선명히 각인 시키는데 성공했다. 페레로 로쉐가 연 매출 184억유로(약 29조5000억원), 미국 초콜릿 시장 점유율 3위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어설픈 TV 광고의 공이 컸다.
1982년 이탈리아의 초콜릿 장인이자 사업가 미켈레 페레로가 창업한 페레로 로쉐. 이 회사는 동그란 아몬드 초콜릿 안에 헤이즐넛 크림을 짜 넣는 아이디어로 유럽 시장을 석권했고, 1990년대 마즈, 허쉬, 캐즈버리 등이 장악했던 미국·영국·호주 등 영미권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페레로 로쉐는 차별화 전략으로 '고급스러운 초콜릿 맛'을 선택했다.1992년 영미권 TV 채널에 송출한 '외교관의 파티(The Ambassador's Party)' 광고도 고급화 전략의 일환이었다.
광고 속 이야기는 대사관에서 열린 파티에서 시작한다. 수많은 정재계 인사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가운데, 웨이터가 페레로 로쉐를 가득 담은 접시를 들고 나타난다. 파티에 모인 사람들은 페레로 로쉐를 맛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하고, 한 여성이 영어로 "이 초콜릿 덕분에 훌륭한 대접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광고가 끝난다. 페레로 로쉐는 이 광고를 통해 '유럽산 고급 초콜릿이 영미 시장에 데뷔하는 그림'을 완성하고자 했다.
하지만 여성의 촌스럽고 어설픈 영어 발음 때문에 광고는 전파를 타자마자 시청자들에게 웃음거리가 됐다. 고급 초콜릿 이미지를 섬세하게 구현하려던 전략이 시작부터 꼬인 셈이다.
외교관의 파티 광고는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대히트를 쳤다. 사람들은 광고 속 마지막 여성의 대사를 흉내 내며 다녔고, 어설픈 영어 발음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페레로 로쉐 초콜릿 매출도 급증한다. 삽시간에 페레로 로쉐는 미국,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초콜릿 중 하나가 됐다.
영미권에서 인지도가 올라간 페레로 로쉐는 이후 누텔라, 킨더 초콜릿 등 여러 제품을 출시하며 전 세계 140여개국으로 시장을 넓힌 초대형 브랜드로 몸집을 불렸다. 페레로 로쉐 글로벌화의 발판 역할을 했던 외교관의 파티 광고는 마케팅 업계에도 노이즈 마케팅의 교과서적 성공 사례로 이름을 남겼다. 마케팅 전문 매체 '마케팅 위크'는 광고에 대해 "너무 나쁜 광고가 결과를 좋게 만들 수도 있다는 법칙을 만들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다만, 페레로 로쉐가 글로벌화의 숨은 공신이 된 이 광고를 자랑스러워하지 않고 있다는 정황은 여러 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페레로 로쉐는 틈만 나면 외교관의 파티 광고를 갈아 치우려 했다. 광고를 내릴 때마다 팬들이 항의해 1993년부터 1999년까지 7년 간 광고가 이어지기는 했지만, 2003년 영국TV에 나간 광고 '리메이크' 버전은 가장 유명했던 여성의 엉성한 영어 멘트를 모두 제거한 상태였다.
이와 관련해 영국 매체 가디언은 "페레로 로쉐의 창업주 가문은 언제나 외교관의 파티 광고에 대한 답변을 회피해 왔다"며 "첫 광고가 계산된 농담이었는지, 혹은 의도치 않은 재앙이었는지는 지금도 비밀로 남아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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