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 공무원의 속마음을 읽어야 AI 데이터가 열린다

AI 산업 육성 핵심인 '공공데이터'
"개인정보 문제 생길까" 제공 피하는 공무원
'낙지부동' 공무원 움직이려면 유인책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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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부터 2011년까지 치매 치료제를 중복 처방받은 환자 수와 사망자 수, 사망자 평균 연령'.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유한 이 자료는 공공데이터법에 따른 공개 대상일까, 아닐까. 특정인의 처방 내역을 요구하는 것도 아닌데 당연히 받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공단이 제출을 거부한 자료다. 없어서 못 주는 게 아니다. '식별하지 못하게 하려면 정보를 가공해야 하는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 제공이 힘들다'는 게 이유였다. 자료를 요청한 수요자는 참다못해 결국 지난해 8월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례를 보고 걱정부터 앞서는 건 공공데이터 개방이 국내 인공지능(AI) 산업을 키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인구도 적고 대규모 데이터 확보가 제한적인 한국에서는 AI를 기반으로 한 의료나 자율주행 같은 첨단산업을 키우려면 공공데이터 활용이 필수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외치던 시절부터 공유된 인식이었다. 2013년 공공데이터법이 만들어진 이후 정권이 세 번 바뀌는 동안에도 데이터 개방의 주도권은 여전히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인 공무원 손에 남아 있다. 부처들이 어쩌다 '공공데이터 개방 목표 초과 달성, 다운로드 몇만 건 돌파' 같은 성과 자료를 내지만 데이터는 양보다 질이다.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가 2022년 출범 당시 "주요 공공데이터 개방률이 10%에 불과하다"고 고백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느 정부도 진전을 못 이뤘으니 현 정부에서도 공공데이터 개방은 화두다. 지난달 울산데이터센터 출범식에서 "의료 같은 특수 분야 데이터를 지원해달라(서범석 루닛 대표)", "국가 차원의 데이터셋이 턱없이 부족하다(정신아 카카오 대표)"는 업계의 토로가 터져 나왔다. 현재 대통령실은 하정우 AI수석을 중심으로 기술 지원 방안을 마련 중이다.


하지만 공공데이터는 기술 여건만으로는 쉽게 열리지 않는다. 무려 세 명의 대통령이 십수 년 동안 개방하라고 압박했음에도 공무원들이 버텼던 이유부터 짚어봐야 한다. 그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부분은 개인정보가 포함된 공공데이터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조사를 보면 제공 거부 사례의 절반가량이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이었다. 공무원 입장에선 아무리 개인정보를 가공한다고 한들 훗날 발생할지 모를 법적 책임이 제일 큰 부담인 셈이다.

한 고위공직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우정사업본부에서 보험 업무를 맡고 있다고 쳐보자. 보험 가입자가 수백만 명인데, 어떤 AI 기업이 보험 관련 알고리즘을 개발하겠다며 가입자 정보를 요구하면? 물론 법에는 제공하라고 돼 있지만 개인정보를 이유로 거절하면 그만이다. 데이터를 준다고 해서 얻을 이익은 없고 나중에 문제가 되면 감사원 감사에 법적 처벌까지 감당해야 한다. 어느 부처 공무원들이나 똑같은 심정일 거다."


'낙지부동'. 복지부동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신조어다. 흡반으로 바닥에 들러붙듯 꼼짝도 안 하는 관료 조직을 풍자한 말이다. 이렇게 몸을 사리는 공무원들이 공공데이터 개방에 나서도록 하려면 동기를 부여하는 것도 방법이다. 먼저 대부분 부처에서 비주류인 정보화담당관이 공공데이터를 전담하는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하 수석이 제안한 공공AI책임관이 공공데이터 업무를 주도하고 적극 개방하는 공무원은 보상받도록 판을 깔아주는 게 중요하다. 어떻게든 안 주려는 공무원과 끝까지 받아내려는 수요자가 법정에서 싸우는 건 사회적 낭비다. AI 강국을 꿈꾸는 정부가 그런 소모적 갈등에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다.





심나영 산업IT부 차장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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