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며 서울을 생각하다]'핫플 천국' 서울 골목 빈 점포 왜 늘어날까

주요 거리 유동인구 양극화 심화
경기침체보다 디지털 전환 원인
오프라인 수요 감소 세계적 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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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한 행사에서 미국에 산 지 40년 넘은 한국인 교수와 만나 인사를 나눴다. 그는 "상황이 매우 안 좋다, 자영업자들이 다 무너져서 한국 경제가 걱정"이라고 했다.

코로나19 때를 제외하고 해마다 한두 번은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지난봄에는 꽤 오래 한국에 다녀왔다. 홍대, 성수, 명동 등 젊은이들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지역은 어디나 붐비고 있었다. 카페나 식당이 확실히 많고, 주로 화장품이나 럭셔리 상품을 팔거나 또는 관광객들을 위한 물건을 파는 곳이 많았다. 셀카 포토 스튜디오나 한복 대여점 같은 체험 성격 상점들도 인기를 끌고 있었다. 물건을 산다기보다 먹고 마시는 행위를 포함한 다양한 체험에 초점을 두고 있다.


서울의 상업 지도는 젊은이와 관광객의 핫플레이스보다 훨씬 넓다. 강남 상업 지역은 특히 광범위하고, 여의도 같은 부도심을 비롯해 신촌과 영등포 같은 오래된 거점 상업 지역도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가산디지털단지와 G밸리처럼 옛 공단에 들어선 새로운 상업 지역도 눈에 띈다. 여기에 수많은 동네 상업지와 아파트 단지 상가도 있다.

지역들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교수 말에 일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문 닫은 가게도, '임대' 안내를 붙인 곳도 많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반드시 경제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는 게 맞을까. 혹시 변화하는 시대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은 아닐까.


일반 상식으로는 경제가 좋지 않으면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 일정 지역에 빈 점포가 많다는 건 곧 그 지역 상권이 좋지 않음을 말해준다. 사무실도 마찬가지다. 서울 상업 지역은 예로부터 공실이 많지 않았다. 그 때문에 언제나 일정하게 점포를 유지할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어 있다. 다시 말해 상업 지역이란 모름지기 건물로 가득한 거리, 유동 인구가 많아 활기가 넘쳐야 한다. 하지만 과연 21세기에도 맞는 상식일까.


신촌의 대표적인 상권 명물거리 1층 상가에 임대 안내판이 붙어 있다. 사진=윤동주 기자

신촌의 대표적인 상권 명물거리 1층 상가에 임대 안내판이 붙어 있다. 사진=윤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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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맨해튼 상업 지역에는 빈 가게와 사무실이 많지 않았다. 2010년대 중반 무렵 미국의 '소매업 종말'로 인해 5번가조차 빈 가게가 늘어났다. 하지만, 그 당시 뉴욕의 경제 상황은 2008년 위기에서 회복세를 보이고 있었고, 여러모로 좋아지는 추세였다. 다만 인터넷 쇼핑 시장의 성장에 따라 생활 습관이 변하면서 거리에 상점이 아주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터넷 쇼핑 문화는 더욱 깊이 뿌리 내렸고, 재택근무와 음식 배달이 급속도로 늘면서 예전처럼 반드시 가게와 사무실을 두지 않아도 사업체 운영이 가능해졌다. 뉴욕은 팬데믹에서 회복했지만 최근 활발해진 AI의 폭넓은 도입 추세에 따라 사무실 수요가 줄고 있고, 이런 곳들은 차츰 주거 공간으로 전환하고 있다. 2025년 현재 일상생활은 더욱 디지털화해서 가게나 사무실 같은 물리적 공간은 갈수록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그로 인해 쓸모를 다한, 도시 속 주요 공간을 무작정 비워둘 수는 없으니 주거를 비롯한 다른 용도로의 전환도 빨라지는 추세다.

서울의 거리에 빈 점포가 늘어나는 것을 두고 경제가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결론 짓기는 어렵다. 서울 역시 뉴욕처럼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이 디지털화되었고 인터넷 쇼핑 문화와 배달 음식 등이 보편화되어 가고 있다. 예전처럼 가게나 사무실들이 아주 필요하지 않다. 서울은 뉴욕보다 재택근무 종사자 수는 적지만, 최근 AI 도입이 빨라지고 있으니 이런 현상은 가속화될 것이다. 서울의 거리에 늘어나는 빈 점포가 경제 구조 변화의 영향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서울의 특징으로는 고령화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뉴욕과 비교해 급속도로 인구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고령화될수록 연금 생활자가 늘어나고, 소비 형태도 검소한 쪽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상업 지역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소비가 전체적으로 줄기 때문에 가게들이 예전만큼 필요가 없어질 테고, 그러니 자연스럽게 빈 점포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도쿄 한복판 상업 지역은 관광객을 포함해 유동 인구가 많기 때문에 아직은 상황이 좋아 보이지만 주택가로 갈수록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고, 그로 인해 전반적인 기존 상업 군들은 타격을 입고 있다.


결론적으로 서울은 현재 경제 구조 인구 구조라는 두 개의 커다란 변화로 인해 상업 지역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젊은 층의 소비 취향과 외국인 관광 붐으로 일부 상업 지역이 핫플레이스로 부상하고 있긴 하지만, 이런 추세는 숫자로 볼 때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모든 상업 지역이 모두 다 핫플레이스로 거듭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실에 맞는 도시재생 해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과연 그 해법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크게 두 방향으로 가닥을 잡을 수 있다. 하나는 경제 구조 변화에 맞게 상업 지역의 범위를 축소하면서 주거 기능을 늘리는 것이다. 상업 지역 면적을 축소하면 상업 전반을 더 좁은 범위에 밀집시킬 수 있다. 서울 성북구 보문동을 예로 들면, 주요 상업 지역을 보문역 근처 큰길 쪽을 중심으로 배치하고 주택가 안쪽에는 상업 지역을 억제하면 비어 있는 가게도 줄이고 주거 환경 역시 향상할 수 있다.


상업 건물을 주거용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면 신촌이나 영등포 같은 원래 상업 지역에서도 상업 범위를 한정하는 동시에 기존 상업 시설을 주거 용도로 전환할 수 있다. 또한 세계 주요 도시와 비교해 원도심 상주인구가 적은 편에 속하는 사대문 안에 있는 상업과 사무용 건물을 주택으로 전환함으로써 상주인구를 늘리는 것도 아이디어일 수 있다. 상주인구 증가는 도시재생에서 매우 중요한 요건이다.


또 하나는 성인과 은퇴자 취향에 맞는 상업을 개발하는 것이다. 도쿄 긴자나 런던 켄싱턴처럼 세계 여러 도시마다 성인 고객층이 좋아하는 상업 지역이 따로 있다. 여의도와 강남 일부 지역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주요 소비층은 주로 일반 비즈니스 종사자들이다. 경제와 인구 구조 변화에 맞춰 새로운 고객층에 딱 맞는 상업 지역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지만, 이쪽으로 시선을 돌려 고민한다면 현재 상황에 맞추면서도 서울의 활기를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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