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파워맨]'새벽형 국무총리' 김민석[AK라디오]

"국민 새벽 지키는 새벽 총리되겠다"
'이재명 체제'에서 신명계 대표주자 돼
정국 상황 따라 다양한 선택지 가져

개신교 신자인 김민석 국무총리는 최근까지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새벽'이란 단어를 자주 쓴다. 지난 4일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자리에서는 "새벽 총리가 돼 국정 운영의 체감 속도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7일 취임식에서는 "위대한 대통령의 시대를 여는 참모장이 되겠다. 국민의 새벽을 지키는 새벽 총리가 되겠다"고 했다. 여권에서는 '올빼미형'인 이재명 대통령의 스타일과 김 총리의 스타일이 조화를 이뤄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민석 국무총리. 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민석 국무총리. 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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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김 총리는 각종 현안과 관련해서 의전·대독 총리의 역할을 넘어서서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 역할을 부여받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인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김종필 국무총리, 노무현 대통령 시절 이해찬 국무총리처럼 이른바 '실세 총리'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김 총리는 1964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태어났다. 경주 김씨로 삼형제 중 막내다. 서대문중학교-숭실고등학교-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하버드대·중국 칭화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럿거스뉴저지주립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재학 시절 서울대 총학생회장·전국학생총연합 의장을 지냈고, 미문화원 방화 사건을 배후 조종한 혐의 등으로 3년 정도 감옥 생활을 했다.

김대중 전 총재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해 1992년 14대 총선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서울 영등포을에서 민자당 중진이었던 나웅배 의원과 겨뤄 260표 차로 패배했다. 28세 때였다. 32세 때인 1996년 탤런트 최불암 씨를 꺾고 15대 국회에 진출하면서 '386 그룹(60년대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30대)'의 선두주자로 정계의 '샛별'로서 주목받았다. 그러나 재선 의원이던 2002년 서울시장에 도전했다가 낙선한 이후 노무현 대선 후보의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했다. 정몽준 후보가 이끌던 국민통합21에 합류하면서 '김민새(김민석+철새)'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하면서 그는 2020년 다시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돌아올 때까지 긴 야인 생활을 해야 했다. 이 기간에 부산시장 출마, 지역구·비례 출마 등 정치적 도전을 계속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중국 칭화대 법학대학원(석사)과 미국 럿거스뉴저지주립대(박사. 미국 변호사 자격 취득)에서 공부도 했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10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을 예방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민석 국무총리가 10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을 예방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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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더불어민주당으로 돌아와 민주연구원장을 맡았고, 2020년 서울 영등포을에서 당선해 21대 국회에 진출했다. 보건복지위원장, 정책위의장, 선대위 종합상황실장 등을 지냈다.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신명계(신 이재명계) 대표 주자로 떠올라 정치적으로 완벽하게 재기했다. '비명 학살'로 통칭하는 총선 때는 총괄상황실장을 맡았다. 지난해 8·18 전당대회 최고위원 선거에서 1위를 해 수석최고위원이 됐다. 일찍부터 '계엄' 가능성을 예측했고, '이재명에 관하여'라는 책을 내며 '실용주의자 이재명'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지난 6·3 대선 때는 선대위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대선 승리 일등 공신이 됐다.


대선 이후 당 대표나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 뜻을 두지 않겠느냐는 예측이 많았는데, 이 대통령은 국무총리로 김민석 의원을 선택했다. 화합형 인물보다는 실질적으로 일을 통해서 성과를 만들어내고 빠르게 국가를 좀 안정시키면서 중심을 잡을 그러한 인물을 국무총리로 지명해야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

김민석 국무총리의 정치적인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이냐는 정국 상황과 이 대통령과의 관계에 따라 유동적일 것으로 보인다. 국무총리를 오래 하면서 바로 대통령 후보를 노릴 것이냐, 중간에 당 대표를 거쳐서 후일을 도모할 것이냐, 아니면 내년 지자체 선거 때 서울시장에 도전할 것이냐는 정국 흐름 속에서 가변성이 있다. 김 총리로서는 여러 선택지를 가진 정치적 호기를 맞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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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kumkang21@asiae.co.kr
마예나 기자 sw93yen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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