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금융계열사인 한화금융그룹이 인도네시아에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다. 그동안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생명보험·손해보험·증권·자산운용업에 이어 최근 은행업까지 진출하면서 몸집이 커진 영향이다. 국내에서 계열분리와 지주사 전환 등의 장기 과제를 안고 있는 한화금융이 해외에서 먼저 지주사 체제 실험을 해보는 셈이다.
15일 아시아경제가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청(OJK)을 통해 확인한 결과 OJK는 최근 한화그룹에 공문을 보내 OJK가 지난해 말 도입한 '금융복합그룹 및 금융복합그룹 지주사에 관한 규정'의 후속 이행 사항에 대해 안내했다. OJK 관계자는 "이 사안은 한화생명 인도네시아법인 준법감시인에게도 전달됐고 우리 측과 관련 회의도 열었다"고 설명했다.
OJK를 통해 확보한 인도네시아의 '금융복합그룹 규정'을 보면 현지에서 영업하는 금융사가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 의무적으로 지주사를 설립하도록 강제하는 게 핵심이다. 관련 규정 제30호 제2조 1·2항을 보면 '금융복합그룹의 총자산이 100조루피아(약 8조5000억원) 이상이고 서로 다른 2개 분야 이상의 금융기관을 보유한 경우' 지주사를 설립해야 한다. '총자산이 20조루피아(약 1조7000억원) 이상 100조루피아 미만이고 서로 다른 3개 분야 이상의 금융기관을 보유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요건을 6개월 이상 충족하면 지주사 설립 의무가 발동된다. 이 경우 금융복합그룹은 OJK에 지주사 설립 신청서를 제출해야 하고 6개월 내 설립을 완료해야 한다. 기준 충족 시점부터 지주사 설립까지 1년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OJK가 한화그룹에 별도로 금융복합그룹 규제 관련 이행 사항을 전달한 건 한화생명 이 인도네시아 재계 6위 리포그룹(Lippo Group)이 보유했던 노부은행의 경영권 확보를 눈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화생명은 지난해 5월 국내 보험사 최초로 해외 은행업 진출을 목표로 노부은행 인수를 위한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OJK는 한화그룹에 금융복합그룹 규제 관련 내용을 전달한 직후인 지난달 30일 노부은행 인수를 최종 승인했다. 노부은행의 자산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3조원이다. 그동안 한화금융이 보유한 인도네시아 현지 금융계열사 자산을 합쳐도 금융복합그룹 규제에 해당하지 않았지만 노부은행을 인수한 시점부터 지주사 의무설립 요건이 충족된 것이다.
한화금융은 약 13년 전부터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기틀을 닦아왔다. 2012년 한화생명이 인도네시아 생보사 물티코생명을 인수한 뒤 2013년 10월 한화생명 인도네시아를 출범한 게 시초다. 2023년 3월엔 한화생명 인도네시아와 한화손해보험이 리포그룹으로부터 현지 손보사 리포손해보험을 인수하며 손해보험시장에 진출했다. 지난해 10월엔 한화투자증권이 현지 증권사인 칩타다나증권을 인수했고 올해엔 칩타다나자산운용 인수의 최종 인가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한화금융은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은행·보험·증권·자산운용업을 아우르는 글로벌금융그룹이 됐고 업권 간 시너지 극대화 전략을 모색하던 차에 금융당국에 의해 지주사 전환이라는 변화를 맞게 됐다.
한화금융은 관련 규정에 따라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내년 중으로 지주사 설립을 마무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 지주회사 설립 형태는 크게 '운영형'과 '비운형영' 두 가지로 나뉜다. 운영형은 금융지주사가 자체적으로 금융업무를 수행하고 그룹 내 다른 금융사들을 관리·지배하는 형태다. 비운영형은 국내 금융지주사처럼 금융업을 하지 않고 순수 지주사 역할만 수행하는 방식이다. 한화금융의 경우 규모가 가장 큰 한화생명이 인도네시아 내 신설 금융지주사를 설립해 다른 금융계열사를 지배하거나 현지서 생보업을 영위하는 한화생명 인도네시아가 금융지주 역할을 하며 다른 금융계열사를 지배하는 형태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한화금융 고위 관계자는 "OJK로부터 지주사 전환 의무가 생겼다는 공식적인 통보가 오면 절차에 맞춰 진행할 것"이라며 "현재 운영형과 비운영형 지주사 중 어떤 방식이 나은지 현지 법무법인과 함께 분석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이번 지주사 전환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최고글로벌책임자(CGO) 겸 사장이 해외무대에서 갖는 첫 지주 리더십 발휘 기회가 될 전망이다. 현재 한화그룹에서는 김 회장이 지난 3월 한화그룹의 지주사 격인 한화 지분 절반을 세 아들에게 증여하면서 경영권 승계와 지주사 전환 움직임이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한화가 지주사 체제가 되면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자본의 분리) 원칙에 따라 한화금융은 그룹에서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 김 사장이 해외에서 지주 리더십을 성공적으로 경험하면 국내에서 그룹 계열분리 이후 독자노선을 걸을 때 지배력은 더 공고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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