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12만3000달러를 돌파했다. 미국 의회가 친(親) 가상자산 법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이른바 '크립토 위크'(crypto week)에 돌입하면서 규제 리스크 해소 기대, 제도권 편입 움직임, 기관 자금 유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비트코인은 금의 연간 수익률을 제치고 올해 최고의 투자 자산으로 부상했으며, 시가총액 기준 세계 4위 기업인 아마존닷컴을 추월하기도 했다.
14일(현지시간) 미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에 따르면 미 동부시간 기준 이날 오전 3시38분 비트코인 1개당 가격은 12만3211달러를 기록했다. 불과 일주일 전 약 10만8000달러였던 비트코인은 전날 사상 처음 12만달러선을 돌파한 데 이어 12만3000달러를 상회했다. 이후에는 오후 8시 11만9700달러대에서 거래되며 12만달러선 아래로 떨어졌다.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면서 안전자산의 대명사로 불리는 금의 연간 수익률도 앞질렀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비트코인의 올해 연간 수익률은 약 30%로, 금의 수익률(27%)을 웃돌았다. 비트코인 수익률이 금을 추월했다는 것은 '디지털 골드'로서의 자산 가치가 시장에서 점차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시가총액 역시 약 2조4000억달러 수준으로 불어나며 금,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의 시총에 이어 전 세계 자산 5위를 차지했다.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인 아마존, 알파벳(구글), 메타(페이스북)는 물론 은의 시가총액도 넘어섰다. 최근 시가총액 3000조원을 넘어선 국내 증시(코스피·코스닥)보다도 많다.
비트코인 가격 상승세에 힘입어 관련 종목도 일제히 올랐다. 가상자산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와 온라인 증권사 로빈후드 주가는 이날 각각 약 2% 상승하며, 52주 신고가를 다시 썼다. 미국 결제 대기업 페이팔 주가는 3.5% 오름세를 보였고 세계 최대 비트코인 보유기업인 스트래티지 주가도 약 4% 뛰었다. 가상자산 관련 기업의 신규 상장(IPO)도 잇따르고 있다. 미국의 자산운용사 그레이스케일 인베스트먼트는 이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비공개 IPO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인 서클인터넷그룹은 지난달 초 뉴욕 증시에 입성했다.
비트코인의 가파른 상승세는 미 하원이 가상자산 관련 법안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려 나타났다. 미 하원은 이번 주(14~18일)를 가상자산 관련 3대 법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주간으로 정했다. 3대 법안은 '지니어스 법안'(스테이블코인 제도화)과 '클래러티 법안'(가상자산 시장 관할 정비), 그리고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감시국가 방지 법안'(소비자 금융 프라이버시 보호)이다.
가상자산 관련 입법이 탄력을 받는 데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우호적 기조도 한몫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임기 시작 후 미국을 '글로벌 가상자산 중심국'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 일가는 현재 채굴 사업, 대규모 비트코인 매입, 자체 발행한 스테이블코인 및 밈코인(meme coin) 등 가상자산 산업 전반에 직접 뛰어든 상태다.
가상자산 제도화 움직임에 따라 기관들도 비트코인을 투자 자산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실제 블랙록, 피델리티 등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출시한 후 관련 ETF에만 150억달러 이상이 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스트래티지를 비롯한 일부 기업들은 비트코인을 현금성 자산의 대안으로 인식하고 회계상 자산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AP통신은 "여러 상장기업이 자산 배분 전략의 중심축으로 비트코인을 채택, 자사주 매각 및 부채 발행을 통해 비트코인 매입을 추진 중"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미국 시장 분석 기관 코베시 레터는 이날 "부유층 자산을 관리하는 패밀리 오피스나 헤지펀드 등 보수적 성향의 기관들도 비트코인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비트코인을 바라보는 일반 투자자의 시선도 변하고 있다. 미국 보안전문기관 시큐리티가 미국 내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30%가 가상자산을 보유 중이며, 그중 67%는 향후 추가 구매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반면 가상자산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응답자 중 14%는 향후 구매 의사가 있다고 했다. 아울러 응답자의 60%는 트럼프 대통령 재임 중 가상자산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의 '친(親) 가상자산' 정책 기조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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