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희 SK 온 대표이사 사장이 나트륨 배터리 전환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중국 기업들이 보급형 배터리인 LFP(리튬·인산철)에 이어 최근 들어 SIB(나트륨 이온 배터리)에 눈길을 주자, 고객사 요구와 기술 성숙도 등을 고려해 단계적 도입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이 사장은 최근 업계 관계자들과 가진 비공식 자리에서 "SIB로 전환하지 않으면, 중국의 압박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SIB 전환 과정에서 고객사의 요구사항과 기술 성숙도뿐 아니라 공급망 안정성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뜻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SIB는 리튬 자원의 가격·공급 한계, 저온 성능 저하 등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로 꼽힌다. 세계 최대 배터리 사인 중국 닝더스다이(CATL)가 올 연말 SIB 양산을 예고하며 한발 앞서나간 상황이다. 기술 주도권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은 이미 시작됐지만, 정작 한국은 일부 기업만이 전선에 뛰어든 실정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SIB 시장은 오는 2035년까지 최대 142억달러(약 19조6414억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나트륨을 주원료로 사용하는 SIB는 에너지 밀도가 낮다는 단점이 있지만, 리튬보다 풍부한 매장량과 높은 온도 안정성이 강점으로 꼽힌다. 영하 20도 이하의 극한 환경에서도 90% 이상의 용량을 유지할 수 있고, 320도까지도 견디는 내열 성능을 갖췄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SIB는 저렴한 LFP 배터리의 보완재로 부각되고 있다.
글로벌 배터리 기업들은 SIB 연구개발(R&D)에 나섰다. 특히 중국은 이 분야에서 압도적인 선두다. 글로벌 SIB 업체 99개 중 83.7%가 중국 기업이다. CATL은 SIB 개발을 마치고, 올해 말부터 본격 양산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기업들의 행보는 리튬 수급 불안정과 가격 급등에 따른 원가 부담 해소, 공급망 안정성 확보, 기술 선점을 동시에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배터리 업계는 뒤늦게 대응에 나서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은 전기차 시장을 겨냥한 2세대 SIB 개발에 착수했으며, 2030년 이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SK온도 SIB 출시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이존하 SK온 부사장은 지난해 초 '인터배터리 2024' 행사에서 "저가 배터리 수요가 증가하면 LFP와 같이 SIB도 미래에 어떤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며 SIB 제품의 출시 필요성을 강조했다. SK온 관계자는 "최근 소듐 등 여러 차세대 소재가 기술적으로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면서 "현재로서는 조기에 본격 도입하기보다는 단계적으로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재 기업 중에선 에코프로 와 에너지11이 선도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두 회사는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의 나트륨 전지 과제를 수주해 올 연말 성과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와 인도, 미국 업체들로부터 샘플 테스트를 받고 있으며, 이르면 연내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SIB는 NCM(니켈·코발트·망간) 같은 삼원계 배터리 양극재 생산 설비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환 비용 부담이 적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동욱 에코프로비엠 이사는 "기존 양산 라인을 그대로 쓸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 중 하나"라며 "SIB 시장이 열리면 언제든 양산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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