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 글이 올라왔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자신의 여자 동기가 시보 떡으로 백설기를 돌렸는데, 시보 떡을 사무실 쓰레기통에서 발견하고 밤새 울었다는 내용이었다. '시보 떡'은 공무원들이 임용 후 6개월 시보 기간이 끝나면 직장 동료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떡을 돌리는 관행이었다. 논란이 확산하면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업무보고에서까지 등장했다. 당시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은 '시보 떡' 돌리기 문화와 관련, 불합리한 관행을 없애겠다고 했다. 이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 '시보 떡' 문화 근절에 나섰고 일부 지자체들은 시보 기간을 마친 공무원들에게 축하의 떡이나 꽃다발 등을 주면서 지금의 거의 사라진 문화가 됐다.
이보다 구태이자 악습인 '간부 모시는 날'은 현재 진행형이다. 공직 사회 '모시는 날'은 하급자들이 상급자에게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대접하는 관행으로, 팀원끼리 돈을 모으고 순번을 정해 간부의 입맛과 일정에 맞춰 식사를 준비한다. 그 과정에서 팀 운영비는 물론 사비까지 쓰인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중앙부처와 지자체 공무원 15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첫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18.1%가 최근 1년 사이 '모시는 날'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경험 응답에서 중앙부처는 10.1%, 지방자치단체는 무려 23.9%에 달했다. 그 이유는 대체로 '관행이어서' '간부가 인사·성과 평가의 주체이기 때문에'였다. 공직사회의 수직적 구조와 평가 권한이 이런 관행을 지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별도조사(2023년 12월∼2024년 1월·지방 공무원 및 지자체 산하 공무원 1008명 대상)에서도 절반이 넘는 공무원들이 '모시는 날이 있다'고 답했다. 10명 중 9명이 불편함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비용은 팀 운영비(44.2%)와 팀원 사비(39.2%)가 대부분이었고, 간부가 자비를 부담한다는 응답은 고작 3.6%에 불과했다.
모시는 날은 금전적 부담, 점심시간의 자유 침해, 메뉴 선정 등의 감정 노동, 업무 외 준비 부담 등 다양한 폐해를 낳는다. 특히 중앙부처보다는 같은 사람들과 오랜 시간 얼굴을 맞대는 기초 지자체에서 더욱 심각하다. 정부가 칼을 빼 들고 각 지자체, 기관에서도 모시는 날 없애기에 나섰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다. 모시는 날은 공직 사회의 폐단인 동시에 공직 사회의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줄줄이 퇴사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공무원들, 떨어지는 경쟁률이 그 경고음이다. 올해 지방직 9급 공무원 채용시험 경쟁률은 8.8대 1로 최근 5년 내 최저다. 낮은 보수, 경직된 조직문화, 악성 민원 등 업무 스트레스, 그리고 이처럼 낡은 관행들이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14일 행정고시에 합격해 5급 사무관으로 임용된 신임 공무원들을 향해 청렴을 강조하면서 성남시장과 경기지사를 거칠 때 일화들을 소개했다. 이 대통령은 "돈은 마귀다. 하지만 절대 마귀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가장 아름다운 천사, 친구, 친척, 애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모시는 날도 마귀와 같다. 누가 누구를 모시는 시대는 지났다. '모시는 문화'에서 '같이 일하는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이경호 이슈&트렌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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