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협상이란 모든 카드를 바스켓에 담아,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구조로 재편하는 작업이다."
관세 협상의 필승 전략을 묻는 말에 한 전직 대사는 이렇게 말했다. 외교나 통상 협상은 단일 의제로 타결되지 않는다. 여러 분야의 이해관계를 하나의 틀로 묶고, 상대가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조합해야 한다.
지금 한국은 트럼프와의 협상을 위한 바스켓을 가득 채웠지만, 그 안의 카드를 아직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배열하지는 못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한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최대 50%, 자동차와 부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했고, 8월부터는 25%의 상호관세가 예고돼 압박이 커지고 있다.
한국 정부는 반도체와 배터리를 앞세운 제조업 중심의 '한미 제조업 르네상스 파트너십'을 내세웠다. 최근에는 여기에 농업 분야 일부 개방 가능성도 포함해 협상 여지를 넓히겠다는 메시지를 냈다. 특히 미국이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여기는 농축산물 시장 접근에 일정 부분 응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며, 협상 테이블 위에 새로운 카드를 올렸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카드 나열이 아니라, 미국이 중시하는 고용과 산업 기반 회복이라는 구조적 요구에 응답하는 맞춤형 카드다. 한국은 다양한 투자 계획과 공급망 협력을 제시했지만, 그것이 미국의 생존과 어떻게 맞물리는지는 구조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를 위해 반드시 많은 것을 내줄 필요는 없다. 미국의 통점을 정확히 짚어낸다면, 적절한 공략 하나만으로도 협상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 트럼프는 복잡한 설명을 듣지 않는다. "이게 미국에 어떤 이익이 되느냐"는 단 하나의 본질만을 요구한다. 그 밑바닥에는 제조업 공동화, 기술 패권 경쟁, 중국 중심 공급망 확장에 대한 깊은 불안이 깔려 있다.
베트남은 미국의 불안을 정확히 겨냥해 협상 방식을 재설계했다. 미국은 베트남에 46%의 상호관세를 예고했으나, 이를 20% 수준으로 절반 이상 낮췄다. 베트남은 자국 시장을 개방하고 중국산 제품이 베트남을 경유해 우회 수출되는 '원산지 세탁' 문제에 대해서는 40%의 고율 관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여기에 더해 베트남은 자국 내 희토류 탐사 확대, 전기차 배터리 생산 능력 강화 계획 등을 통해 미국의 중국 의존 탈피 전략에 호응하고 있다. 일방적 양보 대신 공동의 안보·산업 전략 틀을 제시한 셈이다. 베트남의 협상 사례는 미국의 불안을 제거하는 방식이 효과적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국의 거친 요구는 때때로 협상 국가들을 압도하는 거만한 힘으로 비치지만, 그 본질은 오히려 생존을 향한 몸부림에 가깝다. 미국은 지금도 자국 산업의 붕괴, 공급망의 이탈, 기술 패권 경쟁에서의 후퇴에 대한 위기의식 속에서 움직이고 있으며, 협상 상대에게도 그 위기에 응답하는 설계를 요구하고 있다.
지금 협상에서 중요한 건 얼마나 더 주느냐가 아니다. 미국이 무엇을 불안해하는지 읽고, 그 구조를 해소할 수 있는 방식으로 협상안을 제시하는 일이다. 미국과 한국의 생존 논리가 어긋나는 듯 보여도, 결국 같은 믹싱볼 안에 담긴 카드의 조합찾기다. 내가 가진 카드 중에서 상대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맞춤형 카드를 찾아내는 것이 관건이다. 이는 미국의 선택지를 좁히는 동시에, 우리 기업이 생존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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