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 칼럼]美 공화당, 미국의 과학 혁신을 공격하다

트럼프 법안, 미래 세대 위한 과학 발전 막을 것
연구 중심 대학들, 수억 달러 손실 입을 수도
국가 부채 폭증…스타트업 생태계 위협

가우탐 무쿤다 예일대 교수. 블룸버그

가우탐 무쿤다 예일대 교수. 블룸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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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OBBBA)'이 법으로 확정됐다. 이제 미국인들은 부유층에게 압도적인 혜택을 줄 수조 달러 규모의 감세,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보험) 및 기타 복지 프로그램에 대한 1조달러 이상의 삭감, 부채 한도 5조달러 인상, 반이민 단속을 위한 1500억달러의 예산 추가 등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이 법안에는 이처럼 수치로 환산하기 어려운 다른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이 법안이 미국의 과학 혁신을 가로막는 것과 관련된다. 이에 대해 이해하려면 먼저 이 법안이 미국의 재정 적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미 의회예산처(CBO)는 이 법안이 향후 10년간 국가 부채를 약 3조달러 늘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보다 더 많은 금액을 제시하는 다른 분석도 많다.

지금의 재정 적자는 미래 세대에는 '세금'이다. 물론 그 적자가 미래 세대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투자'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기 위해 미국이 감당했던 적자에 대해 후회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한 법안은 미래 세대를 위한 최고의 투자라고 할 수 있는 과학 발전을 저해할 것으로 보인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과학에 대한 투자 수익률이 150%에서 300%에 달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 정도 수익을 내는 투자자는 거의 없다. 실제 연방 정부의 과학 지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간 부문 생산성 증가의 4분의 1 정도를 기여해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처럼 생산성 높은 과학에 대한 투자를 이어가기는커녕 과학 발전의 '공급'과 '수요'를 모두 무너뜨리는 법안을 내놨다.


먼저 '공급' 측면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법안은 연방정부의 과학 지원을 삭감했다. 특히 미국 정부의 핵심 기관인 국립과학재단(NSF)에서 의료 외 과학 분야 연구를 지원하는 예산이 56%나 줄었다. 또 차세대 미국 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NSF가 대학원생 및 박사후연구원들에게 수여해 온 장학금은 무려 73%나 삭감됐다(필자 역시 매사추세츠공대 재학 시절 이 장학금을 받았다).

미 국립보건원(NIH) 역시 큰 타격을 입어 2026년 예산이 180억달러 줄어들 전망이다. 물론 차기 정부가 예산 삭감을 철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미국의 과학자 한 세대가 이뤄낼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고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혁신이 사라지게 된다.


이것만으로도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법안은 미국 과학 기술에 재앙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과학 연구는 대개 연구 중심 대학에서 이뤄지며, 이들 대학은 자체 기금을 통해 연구를 지원한다. 그런데 이번 법안은 이 자체 기금에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이들 대학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 이 세금은 해당 대학들에 매년 수억 달러의 손실을 안길 것이고, 그 대부분은 연구 예산에서 빠지게 될 것이다.


이제 감세 법안이 과학 발전의 '수요' 측면에 미칠 영향을 살펴보자. 배터리 산업을 예로 들면 앞으로 미국 산업이 국방·자동차 등에 적용되는 배터리 기술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될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이전 행정부는 해당 기술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배터리의 국내 생산을 보조금으로 지원해왔다. 그러나 이번 감세 법안은 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크게 제한했다.


인공지능(AI)도 마찬가지다. AI는 상상 이상으로 전력을 많이 소비한다. 2030년까지 AI 데이터센터만으로도 미국 내 14GW의 전력 용량이 추가로 필요할 것이다. 지금은 풍력·태양광 발전이 화석연료보다 더 저렴하기 때문에 기후변화를 신경 쓰지 않는 사람에게조차 친환경 에너지를 선택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타당하다. 그런데도 이번 감세 법안은 풍력·태양광 발전에 적용되던 세금 혜택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결과 미국 전역에서 전기요금이 오를 것이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보수 성향 의원들에게 풍력·태양광 설치 세금 혜택을 더 제한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피해는 더 확산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감세 법안이 국가 부채를 폭증시키면서 초래할 높은 금리 수준이다. 역사적으로 부채비율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1%포인트 늘어날 때마다 5년 만기 국채 금리는 3bp(1bp=0.01%포인트)씩 상승했다. CBO는 이번 법안으로 이 비율이 24%에서 33%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높은 금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경제에 타격을 주는데, 특히 첨단기술 스타트업, 즉 '딥테크(deep tech)'에 치명적이다. 이들 기업의 가치는 일반적으로 미래에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 시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을 현재로 할인해서 산정하는 방식으로 계산된다. 이때 적용하는 할인율은 금리에 따라 결정된다. 금리 수준이 높으면 할인율이 커지는데, 이는 곧 현재 기업 가치가 급격히 낮아진다는 뜻이다. 할인율은 복리처럼 작동하기에 단 몇 퍼센트 차이만으로도 큰 영향을 준다. 기업이 유동성을 확보하기까지 1~2년밖에 남지 않았다면 별문제가 없을 테지만 보통의 딥테크 스타트업은 시장 진입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결국 할인율이 조금만 높아져도 이들 기업의 현재 가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높은 금리로 인해 투자자와 창업자 모두 딥테크에서 손을 떼게 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은 말 그대로 크다. 그러나 미국의 과학 혁신 관점에서 보면 매우 추하다. 이 법안으로 인해 미국 경제의 미래에서 과학과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과학이 미국의 번영과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언젠가 우리가 한 세기 동안 이어온 '(과학) 혁신의 리더십'을 버린 것을 후회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가우탐 무쿤다 예일대 교수


이 글은 블룸버그의 칼럼 Republicans Just Attacked US Innovation을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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