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편 중 절반이 정보 미공개…"동물, 극의 주인공인가 도구인가"

3초 출연…절반 이상 '소품'처럼 사용
출처·안전 기준 등 여전히 '비공개'
촬영 후 환불(?)…사후 관리도 허술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본문 내용과 직접 연관 없음.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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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161편과 방송된 드라마 146편, 총 307편을 분석한 결과, 이 중 114편(39.4%)에 동물이 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드라마에서는 55.1%에서 동물이 출연해 영화(29%)보다 출연 비율이 두 배 가까이 높았다.


국내 최대 동물단체 '동물권행동 카라'가 운영하는 '동물 출연 미디어 모니터링 본부'는 2024년 극장, TV,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공개된 영화와 드라마를 대상으로 출연 동물의 활용 방식 등을 집중 분석했다.

분석 결과, 출연 동물의 절반 이상은 극 전개와는 무관하게 배경이나 소품처럼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 307편 중 50.8%는 동물이 짧은 장면에만 등장했으며, 이야기 흐름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다. 반면 극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경우는 29.5%, 동일 동물이 반복 등장한 경우는 7.4%, 주·조연급으로 활약한 경우는 12.3%에 불과했다.


출연 동물 중에서는 개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영화에서는 출연 동물 중 42.1%, 드라마에서는 57.9%가 개였다. 이 외에도 고양이, 말, 닭, 야생동물, 어류, 조류 등이 등장했으며, 특히 닭은 현대극에서도 자주 등장했지만 대부분 배경 연출에 그쳤다. 동모본 관계자는 "동물의 출연은 대부분 3~5초 이내의 짧은 장면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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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동물의 출처, 섭외 업체, 관리 주체 등 기본적인 촬영 정보는 엔딩 크레디트에 명시돼야 하지만 전체 307편 중 39.5%는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특히 영화의 경우 촬영이 안전하게 진행됐음을 알리는 안내 문구가 포함된 비율은 15.3%에 불과했다. 드라마는 55.3%로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절반 수준에 그쳤다.


드라마 중 안내 문구가 포함된 42편 가운데 78.6%는 '가이드라인을 참고했다'고 명시했으며, 이 중 39.4%는 '동물복지 가이드라인'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이 외에도 '전문가와 함께 촬영했다(14.3%)' '안전하게 촬영했다(7.1%)' 등의 문구도 일부 확인됐다. 반면 영화에서는 동물복지 가이드라인을 참고했다는 문구가 명시된 경우는 단 한 편도 없었다.

출연 동물의 안전을 책임지는 주체도 명확하지 않았다. 권나미 활동가는 "제작진은 관련 기준이 없어 동물 관리를 농장주, 동물업체, 양식업체 운영자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고, 전문가와 함께 촬영했다는 문구로 이를 대신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농장주의 경우, 촬영 중 동물이 죽더라도 피해 보상만 하면 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동물의 안전을 책임진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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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동물에 대한 정보와 관리 책임 주체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단순히 전문가와 안전하게 촬영했다는 문구만으로는 현장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제작 현장의 실질적인 기준 마련과 정보의 투명한 공개가 시급하다.


한 영화 제작사 대표 A씨는 "동물 촬영 가이드라인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된다"며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참고할 기준이 없어 난감할 때가 많다. 이야기를 나눠보면 관련 내용을 잘 모르는 제작자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식 기준이 없다 보니 경험 많은 업체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는데, 그 업체가 동물을 제대로 관리하는지 확인하기 어렵고, 문제가 생길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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