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수입이 통상 협상 카드로 거론되는 순간, 우리는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
경북 사과 주산지 농민들이 정부의 미국산 사과 수입 검토 움직임에 강경한 입장을 내비치며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경북 청송, 의성, 안동, 문경, 영주, 봉화 등 전국 생산량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지역 농가들은 "수입 허용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닌 생존권의 문제"라며 "정부가 농민을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과 농민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뚜렷하다. 기후재난과 농자재 가격 급등, 인건비 상승 등 삼중고에 시달리는 가운데 수입 사과라는 '직격탄'이 날아들면 더는 버틸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한다.
청송에서 20년째 사과를 재배해 온 이 모(70) 씨는 "지난해 냉해와 우박으로 반토막 난 수확량을 올해는 산불과 폭염이 덮쳤다"며 "정부가 이런 상황에서 미국산 사과 수입을 검토한다는 건 농민에게 사망 선고를 내리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의성의 박 모(64) 씨 역시 "정부는 사과값 폭락 때마다 수수방관만 해왔고, 이제는 수입까지 들여오겠다는 거냐"며 "사과 주산지 농민들과 생산자협회가 총궐기해 대정부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실제 경북 사과 농가는 지난해 기준 비료 가격이 134% 폭등하고, 일손 부족으로 인건비도 급등해 생산비가 치솟았지만, 수확량은 줄어 심각한 경영 위기에 내몰려 있다. 이 가운데 미국산 사과 수입이 허용될 경우 피해 규모는 천문학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2016년 보고서에서 "미국산 사과가 수입될 경우 연간 피해액이 408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보고서를 통해 그 피해 규모를 5980억원까지 상향 조정했다. 이는 2021년 국내 사과 생산액 1조3000억원의 약 3분의 1에 달하는 수치다.
농민단체들은 미국산 사과 수입 논의 자체가 잘못된 방향이라고 지적한다.
한 농민 단체 관계자는 "미국은 자국 농산물 보호를 위해 각종 보조금과 무역장벽을 유지하면서 한국에는 시장을 개방하라고 요구한다"며 "정부가 통상 협상 과정에서 사과를 제물로 삼을 경우 지역 농업과 농촌경제는 회생 불가 수준으로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경북도와 각 지자체는 지역 농가의 우려를 정부에 전달하고 수입 가능성 차단을 위한 대응책 마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과 주산지 국회의원들도 통상협상에서 미국산 사과 제외를 명문화하라는 요구에 힘을 싣고 있다.
정부는 아직 공식적인 수입 결정은 없다고 밝혔지만, 농민들은 이미 벼랑 끝으로 몰렸다는 위기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사과 주권'을 지키기 위한 농민들의 싸움이 격랑 속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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