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진학을 생각하면 막막할 때가 많았어요. 좋은 대학을 가고 싶지만, 방법을 몰라 걱정이 컸어요. 그런데 이번 박람회를 통해 광주·전남 지역에도 다양한 학과가 있고, 대학을 가지 않아도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길이 많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지난 10일 전남 광양 성황스포츠센터. '2025 광양만권진로진학박람회'가 열린 이곳은 이른 아침부터 중·고등학생들로 북적였다. 행사장 앞에 선 한 고등학생은 긴장된 표정 속에서도 설렘을 감추지 못한 채 문을 열고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펼쳐진 광경은 마치 작은 도시처럼 다채로웠다. 분홍, 파랑, 초록, 주황, 하늘색으로 구분된 60여개의 부스가 가득 차 있었고, 그 안에서 학생들은 자신만의 진로를 탐색하듯 부스 사이를 누볐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파란색으로 꾸며진 '진로맵존'. 대학입학전형 체험 부스에는 고등학생들이 줄을 서 있었다. 상담 교사의 설명을 듣던 한 학생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이 학과, 처음 들어봤어요. 나랑 잘 맞는 것 같기도 해요"라며 희망의 조각을 주워 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쪽에서는 AI를 활용한 진로·적성 검사가 진행 중이었다. 검사를 마친 학생들은 바로 상담 멘토와 1대 1로 마주 앉아 현실적인 입시 조언을 들었다. 서울대, KAIST 등 주요 대학의 재학생 멘토들이 참여한 '공부법 코칭존'은 학생들을 위한 상담이 활발히 진행됐다.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실제 공부 방식과 실패담까지 풀어놓는 멘토들 덕분에 현장은 웃음과 진지함이 교차했다.
분홍색으로 구분된 'K-뷰티 특별전'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메이크업 체험, 헤어 스타일링, 피부 관리까지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시도해보는 직업 체험 공간이었다. 학생들은 조심스레 비비크림을 바르기도 하고, 미용 기구로 머리카락을 말아 올리며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 체험에 몰두한 학생들의 모습은 어느새 전문가를 방불케 했다. "미용학과가 이렇게 실습 중심인 줄 몰랐어요. 생각보다 재미있네요." 한 여학생이 체험을 마치고 웃으며 말한다.
이번 박람회는 대학 진학에만 초점을 맞춘 행사가 아니었다. 초록색 존에서는 광양만권의 산업체와 연결된 직업 상담이 활발히 이뤄졌다. 광양시 청년 일자리와 포스코, 광양소방서, 전남창조경제혁신센터 등 지역을 대표하는 기관과 기업들이 학생들과 직접 마주 앉아 진로에 대한 조언을 전했다.
부스 옆, 진학 상담 부스에는 전남대, 광주교대, 목포대, 순천대, 조선대, 청암대, 초당대 등 광주·전남권 13개 대학이 참가해 학과별 특징과 입시요강을 설명했다. 순천제일대의 '웹툰애니메이션과', 동신대 '스포츠학과', 목포대 '수산생명의학과' 등 특색 있는 전공 소개에 학생들의 눈빛은 더욱 빛났다.
단체 티를 입은 학생들이 "이 학과는 나한테 잘 맞을까?"라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은 대학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탐색의 대상으로 바꿔 가는 과정을 보여줬다.
현장에는 또 하나의 눈길을 끄는 방문객들이 있었다. 바로 전남 완도에서 올라온 완도교육복지연구회 관계자들이다. 완도지역 군의원과 교육자, 복지 관계자들로 구성된 이들은 선진지 견학 차 이 박람회를 찾았다.
이들은 완도지역 학생들의 진로설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플랫폼 구축 필요성에 공감하며, 이번 박람회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지역 교육에 접목하고자 하는 의지를 밝혔다. 연구회 관계자는 "이런 종합형 박람회를 완도에서 해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광양교육지원청과 지자체의 협력, 대학과 산업체의 연결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진로는 아직 멀었다'고 느꼈던 학생들에게 이번 박람회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미래를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줬다. 현장에서 만난 많은 학생들은 "조금은 덜 불안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김여선 광양교육장은 "올해 광양은 교육발전특구로 지정됐다"며 "중학교-고등학교-대학 및 산업체를 연계한 진로·진학 정보 제공을 통해 지역 인재 육성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남도교육청과 협력해 광양 학생들에게 맞춤형 상담과 체험 기회를 지속해서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틀간의 박람회가 끝나고, 행사장을 나서는 학생들의 표정에는 처음 들어설 때와는 다른 빛이 담겨 있었다. 누군가는 아직 갈 길을 정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자신이 서 있는 출발선은 분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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