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수천억 투자했는데 회수 불가…산업 초토화, 구조조정 불가피" AI교과서 발행사 절규(종합)

AI교과서, '교과자료' 격하 위기에 반발
"정부 정책 신뢰 하락…3만6000명 종사자 갈 곳 없어진다"
"시대 흐름에 역행…이재명 정부의 큰 실책 될 것"

정부가 5300억원 넘는 예산을 투입해 도입한 AI디지털교과서(AIDT)가 교과 자료로 격하될 위기에 놓이자, 발행사들이 일제히 반발했다. '교과서'로 쓰일 때도 도입률이 32%에 그쳤는데, '교육자료'가 되면 사실상 퇴출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막대한 금액을 선투자했던 발행사들은 "산업이 초토화될 정도의 빅 이벤트"라며 "이대로 개정안이 통과되면 업체들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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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교과서 발행사 14곳과 교과서발전위원회는 11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I교과서의 교과서 지위를 유지한 채 품질 개선과 기능 보완을 위한 법안 수정을 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미 검정과 공급이 완료된 AI교과서의 '교과서' 지위를 변경하려는 시도를 즉각 중단하고, 정부·국회·발행사·교원·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민·관·정 교육혁신 TF'를 즉시 구성해 소통과 조정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헌법소원과 행정소송 등을 강행할 뜻도 내비쳤다.

앞서 국회 교육위원회는 지난 10일 전체회의에서 AI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격하하는 초·중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을 처리했다. 국회 본회의에서도 무리 없이 통과될 것으로 보여, 새 정부에서 AI교과서는 교과서 지위를 잃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개정안은 교과용 도서의 정의를 시행령이 아닌 법률에 명시하고 AI교과서와 같은 형태는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특히 디지털 교육자료는 교육과정의 보조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교육부 장관 등이 이를 사실상 통제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주호표 AI교과서'가 다시 추진되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막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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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사들은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하며 기업에 혼란과 피해를 줬다고 주장했다. AI교과서는 원래 민주당이 야당일 당시 '교육자료'로 격하하는 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지만, 윤석열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폐기됐고 올 1학기에 '교과서'로 정식 사용됐다. 이에 따라 발행사들은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개발에 나섰지만, 불과 4개월 만에 좌초 위기에 놓였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발행사 측은 "AI교과서 인프라를 포함해 약 2조원의 예산이 투입됐고, 3만6000명 이상의 종사자와 가족 수십만 명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며 "일부 기업은 이미 구조조정과 고용 축소에 직면해 있다"고 호소했다. 또한 AI교과서 사용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이재명 정부의 큰 실책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박정과 천재교과서 대표는 "지금까지 국비 5300억원이 들어간 것 외에 (업체별로) 인프라 구축에 8000억원이 투입됐다"며 "교과서 한 종 당 40억원이 들어 200여종을 출원했는데, 이렇게 들어간 비용은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박 대표는 "정부 정책을 믿고 AI교과서를 개발해왔는데, 정부 정책 신뢰가 추락했다"면서 "앞으로 정부 사업에 민간 기업이 파트너십을 가져갈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AI교과서 관련 정부 비용은 학교 인프라 구축과 교사 교육 등에 투입됐을 뿐, 정작 발행사는 콘텐츠와 서비스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을 정부 보조 없이 업체가 전액 부담을 떠안고 진행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욱상 동아출판 대표는 "콘텐츠, 서비스 개발에 정부의 보조 한 푼 없이 각사가 2~3년간 전액 부담했다"며 "정부를 믿고 회사별로 적게는 수백억, 많게는 천억원을 들여 AI교과서를 개발했는데, 하루아침에 교과서 지위가 바뀌어서 무산되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AI교과서 콘텐츠 개발을 아직 완료하지 않은 과목들만이라도 추진 여부를 확실히 매듭짓게 해달라는 주장도 나왔다. 교육부는 AI교과서를 수학, 영어, 정보 등에 우선 도입하고 2028년까지 국어, 사회, 과학 등으로 확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AI교과서는 올 1학기부터 초3·4학년 영어·수학, 중1·고 1 영어·수학·정보 과목에서 사용하고 있다.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기 전까지는 AI교과서가 '교과서' 지위를 갖고 있는 만큼, 발행사들은 일단 수학·과학 등 나머지 과목에 대해서도 콘텐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현준우 아이스크림미디어 대표는 "해당 과목의 AI교과서 개발을 위해 조직을 세팅한 곳도 있기 때문에 AI교과서로 안 쓰겠다고 하면 차라리 빨리 선언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개발 인력 등이 투입된 상태라, AI교과서 지위가 불확실한 상태가 지속되면 피해만 불어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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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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