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의 법적 지위를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격하하는 법안이 국회 교육위원회를 통과하면서 업계의 혼란이 극대화되는 동시에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다. 정권 교체를 계기로 정책 기조가 급변하면서 수년간 AI 디지털교과서 개발에 투자해온 교과서 발행사와 에듀테크 기업들은 투자금 회수가 요원해졌다. 업계 전반이 사실상 사업 중단의 위기로 내몰렸다는 목소리도 터져나온다.
11일 국회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전날 국회 교육위 전체회의에서 AI 디지털교과서 지위를 교육자료로 변경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표결 처리했다. 민주당 교육위 간사인 문정복 의원은 "해당 사안에 대해 당 차원에서 오랜 시간 논의해왔고,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이 법안은 윤석열 정부 시절 여당의 반대로 대통령 거부권까지 행사되며 폐기됐던 안건이지만 정권 교체 이후 다시 상정돼 이번에 상임위 문턱을 넘었다. 여당은 23일 본회의에서 해당 안건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AI 교과서는 윤석열 정부가 디지털 전환의 핵심 정책으로 추진했던 사업이다. 지난해 3월부터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영어·수학·정보 과목에서 시범 도입이 시작됐고, 이후 과학·사회 등 타 과목으로의 확대와 2025년 전면 도입이 예고된 상황이었다. 이를 전제로 천재교육, 비상교육 등 주요 발행사들과 다수의 에듀테크 기업들은 많게는 수백억원씩을 들여 콘텐츠 개발과 플랫폼 구축에 나섰다.
그러나 정부가 과학·사회 과목의 도입 시기를 1년씩 미루고 이번 개정안으로 교과서 지위 자체가 박탈될 상황에 놓이면서 현장의 도입 동력은 사실상 사라졌다. 한 에듀테크 업체 관계자는 "정부 정책을 믿고 사업화에 나섰는데 몇 년 만에 손바닥 뒤집듯 정책이 바뀌어버렸다"며 "유지비도 만만치 않은데 민간기업이 모두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도 "저출생 등 구조적 한계로 수익성 확대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AI 교과서를 위해 채용한 개발 인력의 구조조정은 이미 시작됐다"고 말했다.
AI 교과서의 지위 변경은 예산 구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교과서로 지정되면 국가가 전면 무상 보급하지만 교육자료는 각 학교가 별도 예산으로 구매해야 한다. 이는 곧 채택률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기준 전국 초·중·고 1만1932개교 중 AI 교과서를 1과목 이상 채택한 학교는 전체의 32%에 그쳤다. 한 발행사 관계자는 "당초 AI 교과서 도입 취지는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도구였지만, 정치권 이해관계에 따라 정책이 바뀌면서 현장 혼란만 커졌다"고 말했다.
한편 교과서 발행사와 에듀테크 업체들은 이날 법안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개정안 철회를 촉구했다. 이들은 "정부는 AI 3대 강국을 선언하고, 100조원 규모의 AI 산업 육성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으나 정작 교육 분야에서 AI 교과서를 배제하는 모습은 국민들에게 커다란 혼란을 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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