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자사주 소각 강제, 일방통행은 안 된다

韓, 경영권 방어 수단 부족해
자본시장 선순환 위한 설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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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 전에 사들인 자사주까지 강제로 처분하라고 하진 않겠죠. 그건 너무하잖아요."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을 발의하자 재계에선 기업의 자율성을 해치는 것이라는 반발이 적잖다. 해당 법안은 기업이 보유한 자기주식 중 10% 초과분을 강제로 소각하도록 해 자사주를 통한 경영권 방어나 주가 관리 행태를 제한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 취지는 '주주가치 제고'다. 주가가 오르면 주주들 이익이 많아진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 볼 땐 기업의 전략적 유연성을 제약하는 조치가 된다. 20% 넘는 자사주를 보유 중인 상장사의 임원은 "자사주는 단순한 주주환원 수단이 아니라 필요시 경영 대응 수단으로 기능하는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입법 이후 새로 취득한 자사주에 소각을 요구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과거 다양한 목적으로 취득한 기존 보유분까지 일괄 소각을 요구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다.


재계가 우려하는 건 현행법상 자사주가 무의결권이며 배당도 받을 수 없는데, 전략적 인수합병(M&A)이나 적대적 인수 시 경영권 방어 수단마저 사라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자사주를 소각하는 순간 선택지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자사주 취득 목적과 시점,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괄 소각을 법으로 강제할 경우 기업의 재무 전략 수립은 쉽지 않게 된다.


한국 자본시장엔 포이즌 필(신주인수권 부여), 황금주(특별의결권), 차등의결권 등 다른 나라에서 활용되는 경영권 방어 수단이 사실상 활용되지 못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자사주를 통해 지분을 방어하는 방식으로 간신히 균형을 맞춰왔다고 재계는 항변한다. 자사주 소각을 법으로 의무화한다면 기업 입장에선 다른 방어 수단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정책의 기본 전제는 '균형'이다. 자사주 소각 제도화가 주주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제도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 자사주 남용을 방지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과 일률적으로 소각을 강제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예외 조항을 둔다지만 절차가 복잡해진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업 입장에선 부담이 늘고 오히려 임직원이나 장기 주주에게 돌아갈 몫이 줄어들 수 있다.


정책과 입법이 시장과 기업의 신뢰 위에 설 수 있으려면 더 많은 의견 수렴과 현실 점검이 필요하다. 단순한 구조 개선이 아니라 자본시장 전체의 '선순환'을 위한 설계가 지금 필요한 이유다. 일방통행은 안 된다.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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