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인한 온도 상승뿐 아니라 공기 중 미세입자(에어로졸)가 햇빛을 반사해 지표면을 냉각시키는 현상이 상대습도를 오히려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연구팀은 이로 인해 사람이 겪는 열 스트레스가 더욱 심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은 환경·에너지공학과 윤진호 교수 연구팀이 국내외 연구진과 함께 에어로졸에 의한 지표면 냉각 현상이 상대습도 상승의 주요 원인임을 규명했다고 10일 밝혔다.
에어로졸은 대기 중에 부유하는 고체 또는 액체 상태의 미세한 입자를 의미하며, 자연적인 원인(화산 분출, 바람에 날리는 먼지, 해양의 소금 입자 등)과 인위적 원인(화석연료 연소, 산업 활동, 차량 배출 등) 모두에서 발생할 수 있다. 이 입자들은 대기 중에서 햇빛을 반사하거나 흡수해 지표면의 온도를 변화시키고, 구름 생성에도 영향을 미쳐 기후 시스템에 복잡한 작용을 한다.
연구팀은 유럽중기예보센터가 제공하는 고해상도 대기 재분석 자료(ECMWF Reanalysis v5, ERA5)와 대규모 기후 모델 시뮬레이션을 활용해 약 60년간(1961~2020)의 상대습도 변화와 그 원인을 정밀 분석했다.
그 결과, 공장이나 차량 등에서 배출된 에어로졸 미립자가 햇빛을 산란시켜 지표면을 냉각시키는 동시에 증발량 감소 → 수증기 정체 → 상대습도 상승으로 이어지는 '에어로졸-습도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일정 수준의 에어로졸이 상대습도를 높이며 기온 상승을 억제하는 '완충 작용'을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에어로졸 배출을 급격히 줄일 경우 이 냉각 효과가 사라지면서 기온이 빠르게 오르고, 습도와 결합된 열스트레스 지수(불쾌지수·위험지수 등)가 급격히 증가해 인체 건강과 사회 전반에 새로운 기후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
이 같은 결과는 '깨끗한 공기가 반드시 안전한 기후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역설적인 사실을 드러낸다. 실제로 인도 북부,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동부에 걸친 인도-갠지스 평원(Indo-Gangetic Plain, IGP) 지역에서는 최근 수십 년 동안 상대습도(Relative Humidity, RH)가 뚜렷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 지역은 약 14억명이 거주하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 중 하나로, 고온다습한 여름철에는 열 스트레스, 농업 생산성 저하, 전염병 확산 등의 위협이 매우 크다. 고온에 상대습도가 높게 유지되면 땀 증발을 막아 체온 조절을 어렵게 만들고, 노약자와 어린이 등 취약 계층의 건강에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연구팀은 다중 위성·관측 데이터와 함께 CESM2-LE 모델을 통해 1961~2020년 IGP 지역의 상대습도가 평균 약 10.3% 증가한 것을 확인했다. 분석 결과, 상대습도 상승의 약 95%는 대기 중 수증기량의 증가 때문이며, 기온 감소 역시 상대습도 상승에 기여했으나(5%) 그 영향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란 효과가 큰 에어로졸(황산염, 유기탄소 등)이 지표를 냉각시킴으로써 대기를 안정화시키고 수증기 축적을 유도해 상대습도가 높아지는 일련의 과정을 주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연구팀은 온실가스(GHGs)와 에어로졸의 영향을 각각 분리해 파악하기 위해 단일 인위 강제력(single forcing) 실험도 수행했다. 그 결과, 온실가스는 지표면 온도를 상승시켜 상대습도를 낮추는 반면, 에어로졸은 지표면 온도를 낮춰 상대습도를 높이는 정반대의 효과를 보였다.
예컨대, 온실가스만 변화시킨 경우 수증기는 증가했지만, 온도 상승으로 인해 상대습도는 오히려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에어로졸만 변화시킨 경우에는 지표면 온도가 떨어지면서 상대습도가 상승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연구팀은 다양한 미래 기후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향후 상대습도가 일정 시점 이후 정점에 도달한 뒤 하락세로 전환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윤진호 교수는 "온실가스와 에어로졸이 서로 정반대 방향으로 기후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중성을 간과하면, '깨끗한 공기'가 오히려 단기적인 폭염과 습도 위험을 키울 수 있다"며 "IGP처럼 인구 밀도가 높은 고위험 지역에서는 온실가스 감축과 에어로졸 저감 정책을 어떻게 조화롭게 추진하느냐에 따라 인류가 마주하게 될 기후 위험의 양상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의 제1저자인 박진아 박사과정생은 "높은 습도는 땀 증발을 막아 체온 조절을 방해하고, 습구 온도 등 열 스트레스 지표를 폭발적으로 높인다"면서 "이번 연구는 공기질 개선과 탄소중립 정책이 반드시 통합적 관점에서 수립돼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GIST 환경·에너지공학과 윤진호 교수와 박진아 박사과정생이 주도하고, KAIST 김형준 교수, 세종대학교 정지훈 교수, APEC기후센터(APEC Climate Center) 문수연 박사 등의 국내 연구진과 다수의 국외 연구자들이 참여한 공동연구로,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지원사업 및 해외우수과학자유치사업, 기상청 기후변화 대응 연구과제의 지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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