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은 미국 사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거울과 같다. 만화, 영화 등 화제가 되는 콘텐츠에 언제나 동시대 사람들의 욕망이 담겼다.
슈퍼맨이 처음 등장한 1938년, 미국은 어둠의 시대였다. 1929년 검은 목요일을 시작으로 경제 대공황이 들이닥쳤다. 거리에 실업자가 넘쳐났고, 집에는 먹을 게 부족했다. 1차 세계대전 승리와 경제성장으로 강대국 반열에 올랐던 미국의 몰락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으로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좀처럼 두드러진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그 무렵 나타난 슈퍼맨에는 미국인의 마음이 투영돼 있었다. 많은 이들이 가상 영웅의 활약을 보며 억눌린 욕망을 해소했다. 현실의 나는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슈퍼맨은 달랐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 조국에 대한 자부심까지 회복시켜줬다.
슈퍼맨은 1948년에 실사 시리즈, 1951년에 장편영화로 처음 만들어졌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크리스토퍼 리브 주연의 영화 '슈퍼맨'은 1978년에 개봉했다. 미국과 소련을 필두로 한 냉전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 무렵이다. 세계 평화를 수호하던 슈퍼맨에 막강한 미국의 위상이 투사됐다.
지난 9일 개봉한 '슈퍼맨'에서 이런 이미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첫 신부터 멍이 들고 피투성이다. 싸움에서 패해 북극의 솔리튜드 요새 근처로 내던져진다.
제임스 건 감독은 슈퍼맨(데이비드 코렌스웻)을 무자비하게 때려 부수는 영웅으로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적 연약함을 부여해 절대적 선이 지구에서 낯설게 느껴지도록 연출했다. 순수한 신념마저 삼켜버리는 오늘날 기형화된 세상을 투영했다.
이 같은 의도는 이야기에서도 읽힌다. 슈퍼맨이 숙적 렉스 루터(니콜라스 홀트)에게 맞서 싸우는 내용까진 이전 콘텐츠들과 동일하다. 건 감독은 영웅적 행동에서 비롯된 오해와 반감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대표적 예가 독재국가의 분쟁 지역 침략을 막아내는 이야기다. 전쟁을 피한 이들에겐 추앙받지만 외교 관계에 개입했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루터는 그 틈을 타고 여론전을 펼쳐 슈퍼맨을 옭아맨다.
슈퍼맨은 인간이 아니라서 도마 위에 오른다. 그는 크립톤 출신 외계인으로, 지구로 보내진 난민과 같다.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 모든 문제의 희생양으로 내몰리는 불법 이민자인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민 단속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이를 부각한 연출은 파격적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건 감독은 현지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슈퍼맨이 사람들이 희망을 잃어가는 특별한 시기에 등장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의 악행으로 사회에 악의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이야기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상태로는 문화적으로 전진할 수 없으니까. 만약 제 앞에 인터넷을 사라지게 하는 버튼이 있다면 바로 누를 것이다. 세상을 바꾸려고 영화를 만들진 않는다. 하지만 '슈퍼맨'을 보고 많은 사람이 조금이라도 친절해진다면 무척 기쁠 듯하다."
그가 고안한 슈퍼맨은 성격도 47년 전 영웅과 판이하다. 여자친구와 대화하다 돌연 어린아이처럼 언성을 높이고, 많은 이들의 목숨이 걸린 사건을 저스티스 갱(그린 랜턴·미스터 테리픽·호크걸)에게 미룬다. 하지만 무너지는 건물 틈에 뛰어들어 어린아이, 고립된 여성 운전자, 심지어 동물까지 구할 만큼 고결한 품격을 갖췄다.
원래 미국 문화에서 영웅은 뛰어난 사람이 아닌 누군가를 구하는 이를 뜻했다. 이런 관점에서 슈퍼맨의 원형이 예수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인들의 종교적 마음가짐이 투영됐다는 해석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슈퍼맨은 그런 선한 존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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