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에서 일해도 숨돌릴 틈이 없어요. 휴식은 그림의 떡이죠."
연일 푹푹 찌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9일 오후 광주 광산구 한 아파트 단지. 한낮 기온이 36도를 웃도는 날씨 속 탑차 안에서 택배 분류작업을 하던 손승곤(43) 씨는 "택배 노동자 같은 이동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는 무더위 속에서도 쉴 수가 없다. 탈이 안 생기길 바라면서 일을 빨리 끝내는 수밖에 다른 답이 없다"고 토로했다.
햇볕에 그대로 노출된 탑차는 들어서자마자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손 씨는 한 아파트 동 앞에 탑차를 세운 뒤, 10~20개가량의 택배를 분류해 끌차에 실었다. 5~10분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손 씨의 얼굴과 등은 땀으로 범벅이 돼 있었다.
손 씨는 아파트 단지를 돌며 이 작업을 반복했다. 이 아파트 단지에만 배송해야 하는 물량은 250개 정도. 온종일 탑차를 오르고 내리며 물건을 배송하다 보니 허리 통증은 매일 달고 살고 있다고 한다. 특히 택배 1건당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조금도 쉴 틈 없이 배송을 마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이 수수료마저도 수년간 동결된 상태다.
손 씨는 "한 동에 배송을 마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다시 차에 올라타면 그 잠깐 사이에 운전대는 후끈 달아올라 있다. 대부분 택배 노동자들의 휴식은 이동하는 시간에 차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는 것이 전부다"며 "하루 10시간 이상 배송작업을 마치고 나면 어지럽고 온몸에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따르면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일 경우 실외 작업자에게 충분한 휴식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손 씨 같은 대부분 택배 노동자는 택배회사에 소속되지 않은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점 때문에 휴식과 근로기준법 준수 등은 그림의 떡이다.
손 씨의 하루는 오전 7시 택배회사로 들어오는 물건들의 상·하차로 시작된다. 오전 11시까지 4시간여 동안 분류작업을 마치면 본격적인 배송에 들어간다. 배송 작업장에서도 선풍기 같은 냉방시설은 각자 사비로 구해야 한다. 끌개와 장갑, 조끼 등도 마찬가지로 모두 각 택배 노동자들이 개인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하루에 담당하는 택배 개수는 500~600개 정도. 아파트 단지 같이 밀집된 경우 1시간에 60개까지 처리가 가능하지만, 상가나 원룸 건물 등에선 처리량이 절반으로 뚝 떨어진다. 하루 할당량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자정까지 근무하는 날도 빈번하며, 아내와 함께 남은 일을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
작년에 근무 중 온열질환을 겪은 손 씨는 올해 더위가 더욱 두렵다. 더구나 자치구별로 운영하는 이동노동자 쉼터는 근무 환경을 고려했을 때 전혀 이용할 수 없다.
손 씨는 "작년 8월께 택배 배송을 하던 중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고 쓰러질 뻔했다. 바로 병원에 가보니 열사병이라고 해서 치료를 받았다"며 "올해는 더위가 일찍 시작돼서 또 아플까 걱정된다. 일부러 택배 물량을 동료 직원들에게 나눠 주고 있지만, 수입과 직결되는 문제라서 걱정이다"고 호소했다.
이어 "폭염 속 휴식 등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택배 노동자들이 조금이나마 보상을 받기 위해선 택배 수수료 인상이 절실한데, 사측(CJ대한통운)은 '돈을 더 벌고 싶으면 배송량을 늘려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며 "택배 노동자는 동선이 정해져 있고, 쉴 틈 없이 이동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이동노동자 쉼터 등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다"고 말했다.
한편 질병관리청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에 따르면 올해 온열질환자 집계를 시작한 지난 5월 15일부터 이달 7일까지 광주와 전남의 온열질환자는 각각 19명, 70명 등 89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광주지역 온열질환자는 11명, 전남은 39명 등 50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78% 증가한 수치다. 전날 오전 11시 51분께는 제주시 한경면에서 택배 상·하차 작업 중이던 50대 A씨가 온열질환으로 병원에 이송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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