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자본시장 개혁안 일환으로 배당소득 분리과세가 도입된다는 기대감에 무거운 금융주 주가가 치솟았다. 자산을 주식에 장기투자해도, 배당금이 다른 소득과 합산돼 세금 폭탄을 맞는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소식에 투심이 쏠렸다.
배당소득 분리과세는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담긴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해졌다. 이 안에는 배당성향(순이익 중 배당금 비중)이 35% 이상인 상장사로부터 받은 배당은 종합소득에서 분리해 별도 세율을 적용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개정된 상법과 맞물리면서 이 기준은 기업들에게 강력히 작동할 것으로 보인다. 순이익의 35% 이하로 배당을 하는 기업들에게는 주주들의 기업가치 제고 및 배당 요구가 빗발칠 전망이다. 그동안 미래 투자를 위한다며 회삿돈을 곳간에 쌓아두고 주주들을 외면한 기업과 대주주들은 여간 불안할 수밖에 없다.
닳고 닳은 표현이지만, 역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국내 증시와 산업을 떠받치는 대표 기업은 삼성전자 , SK하이닉스 , 현대차 등이다. 모두 제조업 기반이고, 업황을 주기적으로 타는 소위 '시클리컬(Cyclical)' 업종이다. 반도체 업황 주기는 짧으면 3년, 길면 5년 이상이다. 호황일 땐 반도체에서만 수십조원을 벌지만, 불황일 땐 전년 대비 이익이 반토막 나기 일쑤다. 집 다음으로 비싼 자산인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 가전보다 바꾸는 주기가 길다. 경기가 나빠지면 자동차 교체는 단번에 뒷순위로 밀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3년간의 잉여현금흐름 중 50%를 배당하도록 방침을 세운 것도 이런 업의 특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솔찬히 배당을 하는 기업이지만, 지난 3년간 배당성향은 ▲2022년 17.9% ▲2023년 67.8% ▲2024년 29.2% 등으로 들쭉날쭉하다.
이런 기업들에 기계적으로 35% 배당성향을 강권하면 어떻게 될까. 인공지능(AI) 반도체 시대에선 모두가 서로를 두려워하며 투자하고 있다. 추월에 앞서 생존을 위한 투자다. 적기에 투자 규모를 못 늘리면 곧바로 도태된다. 투자를 멈추면 반도체와 자동차 등 대형 산업에 딸린 소재, 장비, 부품 기업들의 실적도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결국 한국 상장사와 증시 전체의 펀더멘털이 흔들리는 새드엔딩이다.
정치권의 홍보용 문구에 그치지 않으려면 제도 설계는 섬세해야 한다. 업종별로 배당성향 기준을 유연하게 차등 적용하거나, 일정 기간 이상 장기 보유한 주주에게만 분리과세 또는 면세해주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 고대 시인 아르킬로코스의 말처럼, 우리는 기대한 수준까지 올라가는 게 아니라 훈련한 수준까지 떨어진다. 숨은 디테일까지 샅샅이 검토하고 고민하는 노력이 있어야 법 도입 취지가 가장 덜 훼손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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