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가는 첫 해외여행인지라 만에 하나 하는 생각에 취소했습니다."
직장인 김형우 씨(39)는 올여름 일본 여행 계획을 취소했다. 최근 7월 지진설을 비롯해 소규모 지진이 여러 차례 발생하면서 불안감이 커진 탓이다. 이 씨는 "두 살 된 아이랑 처음으로 나가는 해외다 보니 비교적 가깝고 서늘한 홋카이도 항공권을 미리 구매해뒀다"며 "최근 뉴스에 언급되는 지역과 거리도 있고, 크게 걱정한 건 아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내와 서울 시내 호캉스로 계획을 수정했다"고 말했다.
최근 일본 규슈 남부 가고시마현 도카라 열도에서 보름간 1300회 이상의 소규모 지진이 발생하는 등 '7월 일본 대지진설'이 확산하면서 여름 휴가철을 앞둔 국내 여행객들의 일본 여행 수요가 주춤하고 있다. 한국인의 1순위 해외 여행지 일본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국내로 행선지를 변경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9일 여행업계에 따르면 하나투어의 지난 6월 일본 여행수요는 패키지여행 기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달부터 다음 달까지 여름휴가 성수기 수요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교원투어의 '7말 8초(7월 25일~8월 3일)' 예약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일본 예약 비중은 8.6%로 전년 동기 대비 16.6%에서 8%포인트 감소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일본 대지진설이 확산하고, 실제 소규모 지진들이 관측되면서 실제 일본 여행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수요에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일본은 출발일이 임박한 상황에서 예약이 집중되는데, 최근 여행·항공업계를 보면 대지진설로 인해 신규 예약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분위기"라며 "항공사 특가 프로모션도 일본에 집중돼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기존 예약이 취소되는 건은 제한적이고, 신규 예약이 다소 둔화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일본 여행 수요 감소는 대지진설로 인한 심리적인 요인 외에도 경기 부진에 따른 전반적인 수요 감소와도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일본 엔화가 지난해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며 현지 숙박비 상승 등 여행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커졌고, 중국의 무비자 시행으로 대체 수요가 이동하는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하나투어의 올해 6월 패키지여행 수요는 지난해와 비교해 동남아와 유럽이 각각 15%, 7% 감소했다. 반면 무비자 정책을 내세운 중국은 26% 증가했다.
지진설 등으로 일본 여행에 대한 인기가 주춤하면서 국내 관광업계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국내 여행을 선택하는 사례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놀유니버스 관계자는 "여름휴가 시즌을 맞아 정부와 지자체가 주도하는 '숙박세일페스타'와 같은 소비자 지원 정책도 함께 진행되고 있어 국내 여행을 선택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며 "이러한 흐름에 따라 올 여름 국내 여행 수요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해외여행 리스크뿐만 아니라 경기침체와 고물가·고환율 장기화 등이 맞물리면서 나타나는 결과로 분석된다.
국내 여행객 외에 일본으로 향하려던 외국인 관광 수요 역시 한국으로 유입될 수 있다. 일례로 홍콩 그레이터베이항공은 오는 9월 1일부터 일본 소도시 정기 노선 운항을 중단에 나선다. 이는 일본 직항 노선 감소에 따라 인근 대체 여행지로 수요가 옮겨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두투어 관계자는 "인바운드 시장은 다양한 변수에 따라 수요가 유동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섣부른 예측은 어렵지만 일부 해외 여행객이 최근 일본 지진 이슈로 인해 일본 여행을 잠정 보류하고 대체 여행지로 한국을 고려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내다봤다.
일본 외에 인근 국가로 발길을 돌리는 이들도 늘고 있다. 몽골의 상승세가 대표적이다. 교원투어에 따르면 몽골은 휴가철 성수기인 7월 25일~8월 3일 전체 예약의 18.3%를 차지하며 1위를 차지했다. 교원투어 관계자는 "몽골이 여행지 선호도에서 1위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몽골은 한여름에도 평균 기온이 낮아 쾌적한 기후가 장점인데, 주요 지방 공항에서 저비용항공사(LCC)를 중심으로 몽골 노선이 늘어나면서 비수도권 여행객의 접근성이 크게 개선된 것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중국도 무비자 시행 효과로 예약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다만, 최근 역대급 폭염으로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유럽 지역의 여행 수요에는 별다른 변화가 관측되고 있지 않다. 모두투어에 따르면 6월 이후 유럽 여행의 일일 예약 증감률은 3% 미만으로 전반적인 수요 흐름에 있어 유의미한 변화는 보이지 않고 있다. 모두투어 관계자는 "프랑스를 포함한 일부 유럽 지역의 고온 현상은 여름철마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기상 이슈 중 하나로 전년 동기 대비 유럽 여행 수요는 유의미한 변화는 없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유럽 여행에 대한 문의 등 전반적인 수요는 늘어나는 분위기라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작년에는 파리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항공권·숙박비 급등과 관광 제한, 도로 통제 등으로 수요가 크게 위축된 반면 올해는 이 같은 제약이 해소되면서 서유럽과 동유럽을 중심으로 수요 회복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황금연휴로 꼽히는 올 추석 명절 연휴 항공권이 급등한 만큼 추석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여름휴가 시즌을 활용한 장거리 여행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유럽은 환율과 날씨 등의 영향이 거의 없는 지역"이라며 "항공 노선의 공급석을 대부분 어렵지 않게 채우기 때문에 여행수요의 증감도 크지 않고, 추석 연휴에도 이미 유럽 중심으로 사전 예약률이 높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모두투어 측도 "하반기에는 항공 공급석 증가 등으로 점진적인 수요 증가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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