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진행된 '발달장애인 권리 확대를 요구하는 오체투지 투쟁 보고대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를 맡은 이소영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나주석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지난겨울 아동 뮤지컬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앞줄에는 아빠와 엄마, 남자아이 둘로 구성된 가족이 있었다. 큰아이는 6살, 작은아이는 4살쯤 되어 보였다. 큰아이가 약간 부산스러운 듯했다. 극의 이야기가 한창 흘러가던 도중, 앞 좌석 큰아이가 엄마에게 뭔가 말을 했다. 그러자 아빠와 엄마가 황급히 그 아이를 데리고 바깥으로 나갔다. 화장실에 가는 듯했는데, 작은아이만 혼자 남겨졌다.
당시 의아했던 것은 부모의 대응과 꼬마의 반응이었다. 아이가 둘이면 보통 부모 한 명이 남아 다른 아이를 챙겨줘야 할 것 같은데, 부모는 함께 자리를 비웠다. 작은아이는 갑자기 외톨이가 됐는데도 엄마, 아빠를 찾지 않고 차분히 공연을 봤다. 꽤 시간이 지난 뒤, 세 사람이 돌아와 가족이 한자리에 다시 앉았다. 궁금증이 더해진 터라 이들을 유심히 살폈더니, 큰아이가 발달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불편한 형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가족의 모습이었다.
그 사이 뮤지컬은 결말로 향했다. 착한 마음씨를 갖고 있지만, 실수투성이로 주변 이들로부터 잿빛 점표만 받던 주인공 '펀치넬로'는, 자신을 만든 조물주를 만난 자리에서 뮤지컬 제목이기도 한 대사를 듣는다. "넌 특별하단다"라고. "(넌) 내 최고의 작품"이라는 다음 말까지 나오자 아이를 무릎에 올려놨던 엄마가 아이를 꼭 껴안았다. 들썩이는 엄마의 등을 보며 눈물을 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계절이 두 번 바뀌어 이제 무더워진 지금, 당시 사연이 생각난 것은 국회 앞 풍경 때문이었다. 1년 내내 점심때가 되면 국회 앞은 1인 시위 등으로 장터처럼 시끄럽지만, 올해 여름에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하얀색 옷을 입은 채 남녀 수십 명이 북소리에 맞춰 오체투지를 하는 모습이 십수일째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에서 두 팔꿈치와 두 무릎, 이마 등 다섯 곳을 땅에 댄 채 절을 하는 이들은 발달장애 아이와 그 가족을 위한 예산 확대를 주장하는 엄마, 아빠들이었다.
이들은 '부모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를 내건 한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었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 엄마와 아빠는 지난달 16일부터 한 시간씩 그늘 한 점 없는 국회 앞 농성장에서 제자리 오체투지 투쟁에 나섰다. 예산 부족으로 2800명가량이 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대기만 하는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서비스, 최중증 발달장애인 통합돌봄서비스 등 사업 관련 예산 증액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이 예산이 가족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호소했다.
이번엔 이들의 호소가 응답을 받았다. 정부안에 없던 관련 예산이 국회 예산 심사 과정에서 증액돼 전국에 걸쳐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서비스 대기자들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최중증 발달장애인 지원 수당 관련 예산 등 모두 249억원이 편성됐다. 8일 국회 본청 계단에서 진행된 보고대회에서 본 엄마, 아빠들의 얼굴은 환하게 빛났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올여름뿐 아니라 그 앞에 무수히 많이 흘렸던 눈물과 간절한 호소 덕분이었다. 부모들은 "우리의 오체투지는 차별받는 자녀의 삶을 바꾸고, 이 삶들을 지고 가는 부모들의 목소리로 우리의 온전한 삶을 보장하라 외쳐왔다"고 설명했다. 위로의 말만 들어도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부모들을 한낮 땡볕에 세우지 않도록, 이번 예산 심사를 계기로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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