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 우리나라 가계의 여윳돈(여유자금)이 전 분기보다 30조원 늘었다. 연초 상여금 지급 등 계절 효과로 소득은 늘었으나 비상계엄 사태 여파 등에 지출이 쪼그라들면서다. 아파트 신규입주 물량이 감소하면서 큰돈 나갈 일이 줄었다는 점도 가계 여윳돈 확대에 영향을 줬다. 2분기엔 서울 등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가 가계 여유자금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은행이 8일 공개한 '2025년 1분기 자금순환(잠정)' 통계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순자금 운용 규모는 92조9000억원으로 전 분기(62조6000억원) 대비 30조3000억원 늘었다. 분기 기준 통계편제(2009년) 이후 최대 규모다. 직전 최대치는 2023년 1분기 92조8000억원이었다. 순자금 운용은 해당 경제주체의 금융자산 거래액(자금 운용)에서 금융부채 거래액(자금 조달)을 뺀 값으로, 경제 주체의 여유자금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용현 한은 경제통계1국 자금순환팀장은 "연초 상여금 유입 등으로 가계소득이 증가한 가운데 소비 둔화, 아파트 신규입주 물량 감소 등으로 여유자금이 증가해 순자금운용 규모가 전 분기 대비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가계 소득은 전 분기 대비 2.6% 증가했다. 반면 1분기 민간 소비는 전 분기보다 1.4% 줄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신규입주 물량은 9만2000가구로, 전 분기(9만9000가구) 및 전년 동기(10만8000가구) 대비 감소했다. 아파트 신규입주가 감소하면 매매자금이 가계에서 건설기업으로 이전되는 폭이 줄어 가계부문의 전체 여유자금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올해 1분기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자금 운용액은 101조2000억원으로 전 분기(71조2000억원) 대비 증가했다. 금융기관 예치금, 지분증권 및 투자펀드 등을 중심으로 운용 규모가 늘었다. 같은 기간 자금조달액은 8조2000억원으로, 금융기관 차입 증가세가 둔화하면서 조달 규모 역시 전 분기(8조6000억원) 대비 소폭 줄었다.
비금융 법인기업(일반기업)의 순자금 조달 규모는 18조7000억원으로 전 분기(16조2000억원) 대비 커졌다. 김 팀장은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 등 경제 여건 악화로 투자둔화가 이어졌으나 상여금 지급 등 기업 운전자금 수요가 늘며 순자금 조달 규모는 전 분기 대비 소폭 확대됐다"고 말했다. 자금운용은 25조3000억원으로 전 분기 4조4000억원 대비 큰 폭 늘었다. 금융기관 예치금이 줄어들었으나 지분증권 및 투자펀드 등이 증가하면서 확대했다. 자금조달은 44조1000억원으로 전 분기(20조6000억원) 대비 규모를 키웠다. 채권 순 발행 전환 등 직접금융이 증가하며 자금조달 규모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일반정부는 순자금 조달 규모가 40조2000억원으로 전 분기(3조9000억원) 대비 큰 폭으로 확대됐다. 지난 1분기 국채발행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계절성 등에 영향을 받아 정부 지출이 수입보다 더 많이 증가하면서다. 자금 운용은 금융기관 예치금, 지분증권 및 투자펀드를 중심으로 순처분에서 순취득으로 전환했다. 작년 4분기 -24조8000억원에서 올해 1분기 44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자금조달은 국채 발행 및 금융기관 차입이 크게 늘면서 순상환에서 순차입으로 전환했다. 작년 4분기 -20조9000억원에서 올해 1분기 84조8000억원을 기록했다.
국외부문 순자금 조달 규모는 18조5000억원으로 경상수지 흑자 폭 축소 등에 전 분기(41조원) 대비 줄었다. 국외부문의 자금 운용 증가는 우리나라의 대외부채 증가를, 자금조달 증가는 우리나라의 대외자산 증가를 의미한다.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올해 1분기 말 현재 금융자산은 5574조1000억원으로 전 분기 말과 비교해 101조4000억원 증가했다. 금융부채는 2377조9000억원으로 10조4000억원 늘었다. 순금융자산은 3196조2000억원으로 전 분기 말보다 91조1000억원 증가했으며, 금융자산 대비 부채 배율은 2.34배로 전 분기 말(2.31배) 대비 상승했다.
올해 1분기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9.4%로 전 분기(89.6%, 부채잔액·국민계정 조정 등으로 0.5%포인트 수정) 대비 0.2%포인트 줄었다. 6분기 연속 하락이다. 2분기엔 비율이 소폭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 팀장은 "가계 여유자금이 확대한 상황에서 서울시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구역) 해제 등의 영향에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거래가 증가하면서 가계부채 증가 폭이 확대했다"며 "2분기 GDP가 얼마나 증가할지 모르겠으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소폭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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