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입장에서 현재 전력 부담 문제를 논한다는 건 단두대에 서는 심정과 같습니다."
기업 관계자들에게 전력 요금 부담에 대해 묻자 하나같이 난처한 기색을 표했다. 인공지능(AI) 전환으로 인해 전력 수급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서 전기료 부담과 새 정부의 탄소 감축 압박이라는 '3중고'가 한꺼번에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력공사(한전)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위 30대 법인의 전력 사용량은 9만8552GWh에 달했다. 최근 3년 새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한전의 부채가 누적되는 상황에 이르자 정부는 주택용 전기요금을 동결하고 산업용 전기요금만을 빠르게 인상했다. 가계의 물가 부담을 고려한 대책이었지만 전기료 인상분이 그대로 기업의 비용 부담으로 직결되는 구조가 된 것이다.
하지만 산업용 전기료 인상은 AI, 반도체 등 신산업이 본격화하면서 제대로 된 해결책으로 보기 어려워졌다. AI 반도체는 기존 제품보다 수십 배의 전력을 소비한다. 초미세 공정으로 갈수록 전력 소모는 더 커진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기업들은 개발 수요에 발맞춰 용인에 대형 반도체 클러스터를 건설 중이다. 수도권 전력 수요의 4분의 1에 달하는 10GWh 이상의 대규모 전력 공급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새 정부는 에너지 수급 대책 마련을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를 전면에 내걸고 있다. 기업들도 3중고 해결을 위해 한전 중심의 전력 수급 방식에서 새로운 전력 수급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아직 현실 적용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발전기 자체 보유 기업의 전력 거래 금액은 전기요금 총액의 1~2% 수준에 못 미친다.
정부 방침을 따르면서 기업이 부담을 덜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대체 전력 발전을 위한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직접 계약을 맺고 전력을 사오기 위해선 높은 망 이용료를 지불해야 하거나 자가 발전소를 더 많이 지어야 한다. 실무선에선 기업 간 계약을 맺기 위한 구체적인 매뉴얼도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익 추구를 근간으로 하는 기업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랫동안 굳어진 구조를 바꾸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가 재생에너지 전환을 독려하면 기업들이 새로운 전력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불합리한 요소를 제거하는 등 제도적 기반부터 다져야 한다. 전기료 역시 실제 수요에 맞게 계절별, 지역별로 순차적으로 적용하고 연료비 조정 기준을 구체화하는 등의 보완책이 필요하다. 민간에 부담을 무조건 전가할 게 아니라 정부의 현실적인 구조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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