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는 불법파견 소송에서 낯선 업종입니다. 개별 회사마다 구체적인 현장의 모습도 많이 다릅니다. 변호사가 직접 현장을 가지 않는다면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사건을 장악하고 숙지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양시훈 법무법인 화우 파트너 변호사(연수원 32기)는 셀트리온 협력업체 프리죤 소속 직원들이 셀트리온을 상대로 불법파견을 주장하며 낸 근로에 관한 소송 2심에서 최근 승소한 배경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화우는 국내 최대 제약사 중 하나인 셀트리온을 대리해 원고들의 청구를 인용한 1심 판결을 뒤집고 2심에서 '역전승'을 이끌었다.
셀트리온은 소속 근로자가 퇴근한 이후 야간에 바이오의약품 생산공장 내 청정실의 벽과 바닥 등을 청소하고 소독하는 업무를 하청업체 프리죤에 도급해 왔다. 하지만 프리죤 직원들은 2019년 셀트리온이 자신들을 직고용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셀트리온이 형식적으로는 프리죤과 도급 계약을 맺었지만, 실제로는 근로자를 파견받은 구조라는 것이다. 1심은 "셀트리온이 프리죤 직원인 원고들에게 고용 의사를 표시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판결이 뒤집히면서 셀트리온은 한시름 놓게 됐다. 아시아경제는 화우 노동그룹의 양시훈 파트너 변호사와 이충언 변호사(변시 6회)를 직접 만나 역전승을 이끌어낸 재판의 '막전 막후'를 들었다.
화우가 셀트리온 불법파견 소송을 맡게 된 건 1심 판결이 난 후였다. 화우가 이 사건을 맡게 된 건 순전히 우연한 계기였다. 양 변호사는 "당시 다른 회사의 불법파견 소송을 수행하기 위해 인천지방법원에 있었는데, 마침 셀트리온 1심 선고가 그곳에서 이뤄지고 있었다"며 "서울고법 판사 시절 다수의 불법파견 사건을 처리했지만, 셀트리온과 같은 제약업체가 당사자인 사건은 보지 못해 사건의 구체적 내용이 무척 궁금했고, 셀트리온 측에 소송 전략 등을 제시하며 적극적으로 컨택한 끝에 화우에서 이 사건을 맡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1심 판결을 뒤집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 1심 재판부가 불법파견 판단 요소에 관해 조목조목 파견적 요소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1심은 프리죤의 청정실 청소·소독 업무가 셀트리온의 의약품생산 업무와 밀접하게 연동한다는 점을 이유로 셀트리온이 사실상 원고들을 실질적으로 파견받아 사용했다고 판단했다. 파견 근로자가 동일 사업장에서 2년을 넘겨 일하면 사업주는 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
화우는 2심에서 셀트리온과 협력업체의 업무가 명확히 구분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시각적 요소를 적극 활용했다. 재판부가 글만으로는 두 기업의 업무가 뚜렷하게 구분된다고 인식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화우는 항소심 초기부터 셀트리온 공장 내부 업무 수행 상황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이를 구술변론자료 PT에 담아내는 전략을 택했다.
이 변호사는 "직접 방진복을 입고 오후에는 셀트리온 직원의 업무 수행 과정을, 야간에는 새벽 1시까지 협력업체 직원들의 야간클리닝 작업 과정을 각각 촬영한 끝에 육성과 자막이 담긴 6분 분량의 동영상을 제작했다"며 "영상을 통해 협력업체는 주로 천장과 벽, 바닥 등을 소독·청소하는 반면, 셀트리온 직원들은 의약품 생산설비를 대상으로 삼는 등 작업 대상이 완전히 구별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했다.
또 변론 과정에서 협력업체의 업무와 셀트리온 업무를 대조하는 표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만들어 재판부가 직관적으로 두 업무가 전혀 다르고 서로 영향을 미치거나 대체될 수 없음을 피력했다. 결국 야간클리닝 업무는 청정도 유지라는 무형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인 반면, 셀트리온의 주된 업무는 바이오의약품의 '제조·생산'인 점에서 두 업무의 내용과 목적이 본질적으로 전혀 다르다는 점을 입증했다. 2심도 이 주장을 받아들여, 프리죤과 셀트리온의 업종이 상이하다고 판단했다.
협력업체에 대한 셀트리온의 '상당한 지휘·명령'이 있었는지 여부도 주요 쟁점이었다. 1심은 "프리죤 근로자들이 셀트리온의 표준작업지침서(SOP)에 구속돼 작업을 했다"며 실질적으로 이들을 지휘·명령했다고 판단했다. SOP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설정한 제조품질관리기준(GMP) 준수 항목 중 하나다.
화우는 2심에서 바이오약품 제조업의 GMP와 SOP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전략을 폈다. SOP를 여타 제조업 분야의 일반 절차서와 동일한 관점에서 판단한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셀트리온이 작성한 SOP에 기재된 야간클리닝 작업에 사용되는 용액의 종류와 용도, 준수해야 할 상세한 업무 내용, 절차 등은 모두 GMP를 준수하기 위한 것임을 강조했다. 야간클리닝팀 근로자들이 GMP를 준수할 의무가 있는 이상, 단지 SOP에 따라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만으로 '업무상 지휘·명령'을 한 것으로 볼 순 없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셀트리온의 SOP는 클리닝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불가피한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며 "SOP가 GMP를 준수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인 만큼 과도한 지휘명령 요소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했다.
아울러 항소심에서 새로운 증인신문을 통해 야간클리닝 작업자들이 셀트리온 SOP 개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점, 월 단위, 주 단위 등 업무계획표를 협력업체가 독립적으로 수립, 결정할 수 있었다는 점 또한 입증했다.
양 변호사는 이번 사건을 맡으면서 불법파견 소송에서 부는 변화의 바람을 느꼈다고 전했다. 기존에는 자동차나 철강, 타이어, 시멘트 등 전통적인 제조업 분야에서 주로 불법파견 소송이 제기됐는데, 최근 제약·바이오, 반도체 등 초정밀 산업까지도 불법파견 소송이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 변호사는 "1심 판결로 인해 SOP를 사용하는 제약·바이오 등 초정밀 산업으로 불법파견 문제가 확장될 우려가 있었다"며 "이번 판결로 제조와 직접 관련성이 떨어지는 청소·소독 등 기타 필수 업무 수행에 사내 협력업체를 활용하는 것에 관한 불법파견 리스크를 상당 부분 덜어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편, 이 사건은 원고 측 상고로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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