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파탄 민주압살 노태우정권 타도하자." 1992년 여름, 서울 종로는 주말마다 차량 대신 시위 군중이 도로에 넘실댔다. 수천, 수만 명을 헤아리는 이들은 입을 맞춰 4박자 구호를 외쳤다. 정권 타도의 함성은 메아리처럼 거리 곳곳에 번져 나갔다.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당시 풍경은 가수 정태춘의 '92년 장마, 종로에서' 노래 가사처럼 처절했고, 절실했다.
1980~1990년대, 이른바 민주 대 반민주의 시대. 시위대와 경찰이 부딪히는 도심의 거리는 작은 전쟁터와 다를 바 없었다. 시위대는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꺼냈고, 경찰은 최루탄과 백골단을 동원했다. 매캐한 최루가스와 시뻘건 화염이 거리를 휘감던 시절이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국민이 선택한 최고 권력자였지만 군부 독재의 후예라는 수식어를 꼬리표처럼 달고 살았다. 시위 군중이 정부 대신 정권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이유는 타도의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정권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독재 권력의 동의어로 받아들여졌다.
사실 정권이라는 단어 그 자체는 죄가 없다. 정권(政權)의 사전적인 의미는 '정부를 구성하여 나라를 경영할 수 있는 권력'이다. 그 내용 어디에 부정적인 뜻이 있는가. 실제로 정권은 권력 교체의 실질적인 의미를 부여하고자 할 때 활용되기도 한다. 사전적인 의미로 활용하고자 할 때나 학술적 용도에 필요한 경우 정권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도 있다.
문제는 대중의 인식, 특히 정치권의 인식에서 정권은 가치중립적인 단어의 쓰임과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수십 년간, 정권이라는 단어의 외피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운 결과다. 상대 정치세력에 관한 적대감을 드러낼 때는 정부 대신 정권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30년 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윤석열 검찰 정권의 폭주가 이재명 정부를 낳았다."
"이재명 정권 자체가 인사 참사 정권이다."
여야 인사들이 최근 상대를 비판할 때 동원한 표현이다. 정권이라는 단어는 정치적으로 항전 의지를 전하고자 할 때 쓰이곤 했다. 상대를 타도와 응징의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무슨 대화와 타협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정치권의 뒤틀린 관습인 정권이라는 호칭을 이제는 내려놓고, 정부라는 표현으로 대체해 보는 것은 어떤가. 단어 하나만 바꿔 불러도 정치 긴장도를 한결 낮출 수 있다.
이재명 정부, 윤석열 정부, 문재인 정부, 박근혜 정부라는 표현이 이재명 정권, 윤석열 정권, 문재인 정권, 박근혜 정권보다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정치 환경 조성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진전이다. 정부라는 호칭의 연착륙은 정치의 복원, 협치의 마중물이 될 수도 있다. 상대를 인정하는 것 자체가 대화와 타협의 출발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요 정당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은 자신의 언어 습관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상대 정치 세력을 지칭할 때 무심코 멸칭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음습한 기운이 풍기는 표현을 입에 담는 것은 화자의 품위를 훼손하는 일이다. 상대를 절멸의 대상으로 여기는 야만적인 정치 문화, 이제는 내려놓을 때도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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