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년간 국내 주요 기업들의 전기 소비가 13% 증가한 반면 요금 부담은 70%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전력공사(한전)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가정용 대신 산업용 전기요금만 집중적으로 올린 결과다. 철강, 화학 등 수익확보가 어려운 에너지 다소비 기업은 전기료 납부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고전력 산업 확장으로 전기 수요는 더욱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한전에서 전기를 사들이는 기존 방식만으론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가 기업에 에너지 효율화와 신산업 전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현실은 요금 인상과 제도 제약으로 대응 여지가 좁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이재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전에서 제출받은 '2022~2024년 전력요금 부담 현황'에 따르면 전력 사용량 상위 30대 법인의 전기요금 총액은 2022년 9조4725억원에서 올해 16조1109억원으로 70%가량 급증했다. 같은 기간 전력 사용량은 8만7066GWh에서 9만8552GWh로 13.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산업용 전기료 폭탄은 최근 3년간 7차례 인상한 영향이 크다. 반면 주택·일반용 전기료의 인상폭은 산업용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자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대기업 평균 전기요금은 2021년 1666억원에서 올해 2334억원으로 40.7% 증가했다.
업체별로 보면 LG화학은 올해 전기요금을 2023년과 비교해 653억원을 더 내야 한다. 에쓰오일도 연 642억원을 더 납부해야 하는 실정이다.
최규종 대한상공회의소 그린에너지지원센터장은 "전기요금이 지금 수준만으로도 기업 입장에선 상당히 버거운 상황"이라며 "생산비용 부담이 계속 누적되는데도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어 체감하는 압박은 훨씬 더 크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한전에서 전력을 구매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직접전력구매계약(PPA)이나 자가발전 등 다양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국내 사업장에 태양광 PPA를 처음 도입했으며 SK하이닉스도 SK에코플랜트 및 한국수자원공사와 PPA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대안들이 기업들의 전력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이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발전기를 자체 보유한 37개 기업의 전력 거래금액은 2023년 2411억원, 올해 3523억원으로 늘었지만 상위 30대 법인의 전체 전기요금 총액과 비교하면 2% 수준에 그친다. 민간 전력거래 방식을 활용하더라도 별도의 전력망 이용요금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해 기대만큼의 절감 효과를 보기 어렵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3월 국내 제조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에 대응해 "대체 조달 방식을 검토 중"이라고 응답한 기업은 11.7%에 그쳤고 "지금은 아니지만 요금이 더 오른다면 도입할 것"이라는 응답도 27.7%에 불과했다. 대다수 기업은 비용, 제도, 인프라 부족 등 복합적 문제로 뚜렷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에서도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달성하려고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지만 현실은 어려운 상황"이라며 "PPA의 경우 국내에서는 공급처가 많이 부족하다. 자체 발전소를 운영하는 것도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 면에서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특히 반도체 업계는 초대형 클러스터 조성 과정에서 전력 수급 문제가 생존과 직결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대규모 인공지능(AI) 반도체 공장은 단위 면적당 소비전력이 일반 공장 대비 수십 배에 달한다. 전력 공급망 구축이 지연되면 생산 차질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산업경쟁력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경제계는 전기요금 인상 속도를 조절하고 대체 수단 도입을 가로막는 제도적 장벽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한전 전기요금 인상으로 기업들이 민간 전력거래 방식을 도입하고 싶어도, 전력망 이용료 등 추가 비용 때문에 실행에 옮기기 어렵다"며 "요금 인상 폭만이라도 완화해 줄 것을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경제단체들은 잇달아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정부에 전달한 제언집에서 지역 수요에 맞춘 발전설비 도입과 전력 판매 다원화를 포함한 분산에너지 시스템 전환을 제안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계절별·시간대별 요금제 개편과 부하율이 안정적인 업종을 위한 특별 요금제 신설을 요구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산업위기지역에 한해 정부 재원을 활용한 전기요금 감면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 의원은 "전기요금 인상으로 기업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는 전력 수요 증가에 대비한 재생에너지 확대, 공급 다변화 등 근본적인 대응책 마련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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