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가 7월 1일부터 여성 징병제를 본격 시행한다고 발표하면서 글로벌 여성 징병제 확산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이미 노르웨이와 스웨덴이 여성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어 덴마크까지 포함하면 북유럽 3개국이 여성 징병제를 도입한 상황이다.
이러한 현상은 러시아의 군사 위협 증가와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병력 부족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각국의 안보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병력 확보가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덴마크의 여성 징병제는 이스라엘처럼 전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전면적 징병제와는 다른 방식이다. 이스라엘은 만 18세 이상 미혼 여성 모두를 징집 대상으로 하여 전체 여성의 55% 정도가 군 복무를 하고 있다. 반면 덴마크는 '선택적 징병제'를 채택했다. 징병 대상자로는 모든 여성이 등록되지만, 이 중 소수만을 선발해 군 복무를 하게 하는 방식이다. 평시에는 정예병으로 성장할 수 있는 특출한 인재들만 선발하되, 전쟁 등 특수 상황에서는 동원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덴마크 현역 군인은 약 9000명 수준으로, 이 중 4700명이 징집군인이고 나머지는 직업군인이다. 그동안 여군은 대부분 직업군인이었으나, 이제 징집군인 중에도 여성이 포함되게 된다. 덴마크 정부는 징집군인을 현재 4700명에서 6000명으로 늘리고, 복무 기간은 11개월로 정할 계획이다.
주목할 점은 덴마크에서 여성들이 오히려 군 복무를 원하며 경쟁하고 있다는 것이다. 군 복무가 취업 전 경력으로 높이 평가받고 처우도 좋아 여성 단체들이 양성 징병제 도입을 요구해왔을 정도다. 이는 우리나라와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로, 군 복무가 커리어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현재 유럽 상당수 국가가 여성 징병제를 검토하고 있다. 가장 활발하게 논의 중인 국가는 독일과 스위스다. 이들 국가도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병력 자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독일의 출산율은 1.58명, 스위스는 1.40명으로 우리나라보다는 높지만, 실제로는 중동이나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의 출산율이 높아 나타나는 수치다. 특히 독일은 중동 난민을 많이 받아 이슬람 인구가 연간 20만명 이상 증가하고 있으며, 전체 600만명을 넘어선 상황이다.
문제는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이민자들은 징병 대상으로 삼기 어렵고, 징병을 해도 군대 내 융화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다. 자국민들끼리도 군대 내 폭력이나 차별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인종이나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모이면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 이러한 어려움으로 인해 유럽 국가들은 여성 징병제가 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보고 있다. 덴마크처럼 선택적 징병 방식은 사회적 거부감이 크지 않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점진적으로 여성 징병제 비율을 높여나가는 방안들이 추진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정반대 상황이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여성을 징병 대상자에 포함시키려는 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공화당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됐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에는 여성의 군 복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미국은 1974년 베트남전 종전 이후 모병제 국가로 전환했지만, 전시 대비를 위해 징병 대상자들을 미리 등록하는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남성만 등록 대상이었으나,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병력 부족 우려로 여성도 등록하자는 논의가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여성이 전투에 나서면 안 된다"고 명확히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보수주의 세력은 남녀 간 성 역할을 중시하며, 여성은 가정에서 출산과 육아를 통해 병력 자원을 생산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은 역사적으로 많은 문명권에서 여성을 징병 대상에서 제외했던 이유와 맥을 같이 한다. 여성까지 전투에 투입되어 사망하면 전쟁 후 인구 회복이 어려워진다는 인구학적 고려가 작용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여성 징병제 논의에서 예외가 될 수 없는 상황이다. 세계 최저 출산율로 인해 병력 자원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어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현재 성인 남성의 90%가 현역 판정을 받아 군 복무를 하고 있다. 이는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 일본의 현역 판정률 70-80%보다도 높은 수준으로, 사실상 총을 들 수 있으면 모두 보내는 상황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58%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급격한 변화다.
더 큰 문제는 징병 대상인 남성 인구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생까지는 남아 선호사상으로 성비가 116대 100이었지만, 지금은 100대 100 수준으로 균등해졌다. 아래 세대로 갈수록 징병 대상 남성 수가 줄어들어 병력이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북유럽과 달리 지정학적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 덴마크가 1만명 이하의 병력으로 선발 징집이 가능한 반면, 우리나라는 현재 47만명의 병력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의 상비군이 200만명, 러시아가 150만명 등 주변 모든 국가가 군사 대국이기 때문에 병력 규모를 대폭 줄일 수 없다.
현재로서는 50만명 가까운 병력 수준이 유지 가능해 논의 단계에 그치고 있지만, 출산율 반등에 실패할 경우 2040년대부터 인구가 4000만명 선으로 줄어들면 본격적인 여성 징병제 도입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여성 징병제는 단순한 군사 정책을 넘어 사회 전반의 변화를 반영하는 현상이다. 저출산·고령화와 군사적 위협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각국이 찾아가는 해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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