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소니 음주 운전자를 검거하는 경찰관을 보고 가슴이 벅찼습니다. 성악가 대신 경찰의 꿈을 꾸게 된 순간입니다."
경기 남양주 북부경찰서 진접파출소에서 근무 중인 박소정 순경(28)은 2016년 한음 음악 콩쿠르에서 2위를 수상하는 등 촉망받는 예비 성악가였다. 그러나 2017년 수험생 시절 목격한 뺑소니사고 현장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그는 "그날 이후 경찰이라는 존재가 누군가의 삶을 지키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됐다"며 "도움이 필요한 순간 가장 먼저 달려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 경찰이 됐다"고 말했다.
진접파출소는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지역이다. 이 때문에 출동하는 사건의 성격이 천차만별이다. 박 순경은 "도시 지역에서는 주로 가정폭력, 음주운전, 층간 소음과 같은 민감한 민원이 많고, 농촌 지역에서는 절도, 농작물 피해 등 특이 사건이 종종 발생한다"면서 "지역 특성상 단순 순찰이나 민원 대응 외에도 다양한 사건 현장을 마주하게 된다"고 전했다.
박 순경의 하루는 순찰차, 음주 측정기 등 장비 점검부터 시작된다. 민원인 진술서, 근무일지 등 각종 서류를 확인한 뒤 순찰을 한다. 교통 위반 차량 단속뿐만 아니라 차량 조회를 통해 수배 차량이나 이상 징후가 있는 차량을 확인한다. 그는 "단순히 순찰만 하는 게 아니라, 도로 위 위험을 감지하고 대응하는 치안 활동"이라고 말했다.
비록 새내기 경찰이지만 박 순경은 관찰력과 침착함으로 현장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스토킹 신고로 출동한 현장에서 A급 수배자를 알아봐 검거하는가 하면 절도 사건 현장에서 CCTV 속 인상착의를 단서 삼아 피의자를 특정하기도 했다.
박 순경은 자신의 강점을 '공감 능력'이라고 꼽았다. 어느 날 "죽고 싶다"며 파출소에 찾아온 대학생이 1시간 넘게 박 순경과 대화를 나눈 뒤 차분한 공감과 경청에 위안을 얻었고 진정된 상태로 귀가했다. 그는 "자살 시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상태인지 가늠할 수 없는 일이라, 말 한마디도 조심스러웠다"며 "위로한다고 던진 말이 오히려 트리거가 될 수도 있어 최대한 공감하며 경청하려 했다"고 말했다.
쉽게 말을 떼지 못하는 가정폭력, 스토킹 피해자들도 박 순경을 만나면 마음을 연다. 피해자와의 신뢰 형성을 위해 말투, 시선, 자세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쓴다. 박 순경은 "말보다 먼저 상대의 감정을 읽고, 조심스럽게 기다리는 게 더 중요할 때도 많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피해자 상담 업무에 박 순경이 자주 투입된다. 그는 "사수들도 '얘기 잘 들어준다'고 칭찬한다"며 "피해자들이 솔직한 얘기를 털어놓을 때 뿌듯하다"고 했다.
박 순경은 성악 전공자의 재능도 아낌없이 뽐내고 있다. 제79주년 경찰의 날 행사, 남양주 북부경찰서 정년 퇴임식, 경기북부청장 방문 행사 등에서 밴드의 메인보컬로 무대에 올라 큰 박수를 받았다. 박 순경은 "중앙경찰학교에서 인터뷰 도중 성악 전공 얘기가 나오면서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경찰이 되고 나서 다시 무대에 설 줄은 몰랐다"면서도 "가끔은 성악가의 꿈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박 순경은 중앙경찰학교에서 예비 수사경과자 자격을 부여받았다. 경찰 내 수사 부서로 조기 진입할 수 있는 자격으로, 수사 역량이 뛰어난 경찰에게 부여된다. 처음에는 여성청소년 수사에 관심이 많았지만, 현장을 경험하며 형사에도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박 순경은 "형사 선배들이 '일은 힘들지만 다쳐도 자리를 못 떠날 정도로 일이 중독성 있다'고 한다"며 "형사 업무를 경험해보고 싶다. 신체 능력 면에서 (범죄자 검거 때) 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 순경은 지칠 때면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퇴근하거나, 경찰 동기들과 만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에너지를 충전한다. 복싱을 5년간 했고, 지금은 유도까지 배우고 있다. 박 순경은 "경찰이 된 뒤로는 단순히 범인을 잡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직업이라는 걸 느낀다"며 "피해자의 가족이 내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늘 진심을 다해 다가가겠다"고 말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