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새로운 제조업 허브로…ISM·ISRU 기술이 바꾸는 우주경제

연간 6조원 시장 성장 전망, 기존 제조업 생태계 변화 주도

연간 6조원 규모 이상으로 성장할 우주 제조·채굴 시장이 기존 제조업 생태계를 재편하고 있다.


1㎏의 물체를 우주로 보내는 데 수천만 원이 드는 현재의 발사 비용은 우주 개발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우주에서 우주선이 고장 나도 지구에서 부품을 만들어 로켓에 실어 보내야 했고, 지구의 유한한 자원과 우주 쓰레기 문제까지 겹치면서 근본적인 한계에 부딪혔다.

레드와이어(Redwire)는 달과 화성에 둑이나 착륙 패드, 도로 등의 인프라를 건설하는 메이슨(Masos)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사진은 화성에 건설된 우주 기지 상상도. 레드와이어 제공

레드와이어(Redwire)는 달과 화성에 둑이나 착륙 패드, 도로 등의 인프라를 건설하는 메이슨(Masos)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사진은 화성에 건설된 우주 기지 상상도. 레드와이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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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서 자원을 캐고, 궤도에서 제품을 만든다

이런 우주개발의 경제·산업적 한계를 돌파할 게임체인저가 바로 우주 제조(In-Space Manufacturing·ISM)와 우주 자원채굴(In-Situ Resource Utilization·ISRU) 기술이다. 이 두 기술은 우주 개발의 가치사슬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더 이상 지구에서 모든 것을 싣고 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ISM은 지구 궤도나 달, 화성 등 우주 공간에서 직접 부품이나 구조물을 만드는 기술이다. 우주선이 고장 나면 궤도에서 3D 프린터로 즉시 부품을 제작하고, 재료 과학을 활용해 고품질의 재료를 만들며, 로봇 조립 기술로 미래 우주정거장이나 기지에 필요한 대형 구조물도 우주에서 직접 조립할 수 있다. 우주 공간 자체가 거대한 '스마트팩토리'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원료를 현장에서 바로 공급하는 것이 ISRU다. 이름 그대로 '현지 자원 활용' 기술로, 달, 소행성, 화성 등에서 물이나 금속, 희귀 광물 등 자원을 캐내는 기술이다. 달의 극지방에 잠자고 있는 물(얼음)을 채굴해 로켓 연료와 식수로 사용하고, 소행성에서 희귀 금속을 얻어 지구로 가져오거나 ISM의 재료로 활용한다. 우주 전체가 무궁무진한 '자원 창고'가 되는 것이다.


이 두 기술은 상호 보완적이다. ISRU는 ISM에 필요한 재료를 공급하고, ISM은 ISRU를 위한 장비나 기반 시설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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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조사기관 리서치앤마켓츠에 따르면, ISM 시장은 2024년 9억8000만 달러(약 1조 3300억 원)에서 2029년에는 28억7000만 달러(약 3조 9000억 원)로 연평균 23.9%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ISRU 시장도 2024년 2억 달러(약 2720억 원)에서 2034년 17억9000만 달러(2조 4400억 원) 규모로 연평균 24.9% 급성장할 것이라는 게 글로벌마켓인사이트의 전망이다.


ISM 기업들, 우주에서 직접 제조…의약품부터 반도체까지

ISM 분야의 선도 기업은 미국의 레드와이어(Redwire)다. 이 회사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 3D 바이오프린터와 의약품 제조 플랫폼을 설치해 우주 제조의 상업적 가능성을 입증했다.


2023년에는 세계 최초로 인간 무릎 연골을 ISS에서 프린팅해 지구로 회수했고, 2024년에는 인슐린 결정체를 무중력 환경에서 성장시켜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우주 환경이 의약품 결정 품질 향상에 효과적이라는 점이 입증됐다.


레드와이어는 최근 아스페라 바이오메디슨과 협력해 항암제 개발을 위한 우주 연구에도 착수했다. 또한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달 및 화성에서 사용할 착륙 패드, 도로 건설 장비 개발에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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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다 스페이스 인더스트리(Varda Space Industries)는 2023년 자체 개발한 위네바고 1호(W-1)를 통해 항레트로바이러스제 리토나비르의 결정체를 무중력 상태에서 제조했고, 2024년 2월 이 샘플을 지구로 안전하게 회수했다. 이는 우주에서 상업용 의약품을 제조한 세계 최초 사례로 평가된다. 바르다는 이후 다양한 고부가가치 물질 생산을 위한 임무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영국 스타트업 스페이스포지(Space Forge)는 미세중력, 진공, 극한 온도라는 우주 조건을 활용해 고강도·초경량 합금, 고성능 광섬유, 차세대 반도체 등을 제조하는 우주 소재 전문기업이다.


2024년 6월 미국 밴덴버그 기지에서 자사의 첫 우주 제조 전용 위성 '포지스타1(Forge Star-1)'을 성공적으로 발사했으며, 우주 내 반도체 시험 생산과 재진입 기술 시험을 진행 중이다. 영국 최초로 민간 우주 제조 인허가를 획득해 기술력과 정책 기반 모두에서 주목받고 있다.

스페이스포지(Space Forge)가 지난달 22일 발사에 성공한 영국의 첫 번째 우주 제조 전용 위성 '포지스타1(Forge Star-1)'. 포지스타1은 현재 우주 공간에 머물며 차세대 반도체 제조 기술, 열 차폐 시스템 등 기술을 검증하고 있다. 스페이스포지 제공

스페이스포지(Space Forge)가 지난달 22일 발사에 성공한 영국의 첫 번째 우주 제조 전용 위성 '포지스타1(Forge Star-1)'. 포지스타1은 현재 우주 공간에 머물며 차세대 반도체 제조 기술, 열 차폐 시스템 등 기술을 검증하고 있다. 스페이스포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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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RU 기업들, 우주 자원 채굴 현실로

ISRU 분야에선 미국의 아스트로포지(AstroForge)가 소행성 채굴의 상업화를 선도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구 근처에 있는 금속성 소행성을 식별하고 추적해 귀금속을 추출하는 것이 사업목표다.


2024년 상업 기업 최초로 소행성 '2022 OB5'를 향해 위성 '오딘(Odin)'을 발사했고, 이 위성은 소행성 주위를 비행하며 고해상도 이미지 촬영 및 금속성 분석 등 향후 채굴을 위한 핵심 데이터를 수집할 계획이었으나 통신이 끊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스트로포지는 올해 말 또는 2026년 초 '베스트리(Vestri)' 임무를 통해 특정 소행성에 도킹하고 실제 채굴 시범 작업까지 이어갈 계획이다.


중국의 오리진 스페이스(Origin Space)는 2021년 4월 'NEO-1' 위성을 발사해 고도 500km의 태양동기궤도에서 소행성 포획 기술을 시연했고, 이를 통해 추후 실제 소행성 채굴 임무에 필요한 기술적 타당성을 검증했다. 앞서 2020년에는 '리틀 허블'로 불리는 '위안왕1(Yuanwang-1)' 계획을 발표하고, 근지구 소행성(NEA)의 자원 탐사를 위한 다중대역 망원경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미국의 오프월드(OffWorld)는 사람의 개입 없이 AI 기반 자율 로봇 군집이 채굴을 수행하는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이들은 달의 월면토나 소행성의 광물 자원을 활용해 로켓 연료, 건축 자재, 귀금속 등을 확보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2024년 3월에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KIGAM)과 함께 달 남극 자원 조사 및 추출에 대한 국제공동연구 프로젝트에 착수하기도 했다.


일본의 아이스페이스(ispace)는 달 착륙선 개발로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달 자원 활용 및 운송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다. 2024년 5월 두 번째 임무로 달 착륙선 '레질리언스(Resilience)'를 발사해 달 궤도 진입에는 성공했으나 착륙에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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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올해 '아펙스 1.0(Apex 1.0)'을 통해 다시 한번 착륙을 시도할 계획이며, 2029년까지 총 7개 이상의 달 기반 물류 및 자원 개발 임무를 추진, 달 자원 활용 및 운송 서비스를 본격화할 방침이다.


6조원 시장의 주도권, 한국은 어디에

글로벌 우주 제조·채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가운데 한국은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현재는 연구개발과 협력 체계 구축에 주력하는 상황이다.


국내 우주자원 개발의 출발점은 2021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등과 ISRU 분야 다자간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부터였다. 2024년 3월에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미국 오프월드와 달 남극 자원 조사·추출 국제공동연구에 착수하며 국제 협력의 폭을 넓혀갔다.


정부 차원의 행보도 본격화됐다. 우주항공청(KASA)은 올해 업무계획에 '저궤도 우주공장 프로젝트'를 포함시켰다. 이 프로젝트는 우주 공간에서 반도체, 신소재 등 첨단 제품을 생산하는 미래형 공장 구축을 목표로 하며, 한국형 우주 제조 핵심 기술 개발 및 실증을 추진한다. 민간 주도 컨소시엄을 구성해 2027년까지 예비 타당성 조사 통과를 목표로 설정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은 달 탐사선 다누리 개발과 병행해 달 자원 탐사 기술 연구를 진행 중이다. 특히 달 극지방의 물 얼음과 헬륨-3 등 잠재 자원에 대한 탐사 로드맵 구체화 작업에 집중한다.

일본 아이스페이스(ispace)의 달 착륙선 '레질리언스2(resiliencem2)'의 달 착륙 상상도. 아이스페이스 제공

일본 아이스페이스(ispace)의 달 착륙선 '레질리언스2(resiliencem2)'의 달 착륙 상상도. 아이스페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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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장기 전략 로드맵을 세웠다. 과기정통부는 2022년 12월 '제4차 우주개발진흥 기본계획'을 통해 우주자원 개발 및 활용을 위한 중장기 전략을 밝혔다. 달 기지 건설에 필요한 월면토 활용 기술과 달 현지 자원 추출·생산 기술 개발이 핵심 과제로 설정됐으며, 2030년대 중반까지 한국형 달 착륙선에 ISRU 기술을 탑재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민간 기업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위성 개발 경험이 풍부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우주 기지 건설·운용을 위한 모듈 개발에 관심을 보였으며, 정밀제어 기술을 보유한 LIG넥스원은 우주 로봇 및 자율 채굴 시스템 분야 진출을 검토 중이다. 최근에는 우주 환경에서의 소재 개발과 3D 프린팅 기술을 연구하는 국내 스타트업들도 등장하면서 한국 우주 제조업 생태계의 다양성이 점차 확대됐다.


우주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우주항공청의 강력한 추진 의지와 대기업의 투자, 출연연의 연구 역량을 바탕으로 빠른 성장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정부의 체계적인 로드맵과 민간 기업의 적극적 참여가 결합되면서 향후 몇 년 내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제조업 패러다임 전환의 신호탄

우주 제조·채굴 기술의 부상은 단순한 우주 산업 발전을 넘어 전체 제조업 패러다임 전환의 신호탄이다. 지구 기반 제조업체들도 원자재 공급망 다변화와 새로운 소재 활용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반도체, 의약품, 항공우주 소재 등 고부가가치 제조업 분야에서는 우주 제조 기술이 게임체인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무중력과 진공 환경에서만 구현 가능한 극한 성능의 제품들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전망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 한 관계자는 "다만 기술적 불확실성과 막대한 초기 투자비용, 우주자원 소유권을 둘러싼 국제법적 이슈 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면서 "그럼에도 우주가 새로운 제조업 허브로 부상하는 흐름은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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