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확산에 놀라 지자체에 전화부터 돌렸죠"

함양 재해구호물류센터 윤진혁 매니저 산불 당시 회상
산불피해 주민 위해 구호물품 준비부터 현장지원 도맡아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공로직원 선정

희망브리지 윤진혁 매니저가 함양재해구호물류센터에서 이재민에게 전달할 구호물자를 옮기고 있다. 희망브리지

희망브리지 윤진혁 매니저가 함양재해구호물류센터에서 이재민에게 전달할 구호물자를 옮기고 있다. 희망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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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1일 금요일, 경남 산청군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빠르게 번졌다. 퇴근 후 경남 진주의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던 희망브리지 경영지원팀 관재센터 소속 윤진혁 매니저는 TV 뉴스로 긴박한 상황을 접했다. 그는 곧바로 관할 지자체에 전화를 걸어 대피소 개설 여부를 확인하고, 필요한 구호물품 목록을 안내했다.


다음 날 아침, 윤 매니저는 경남 함양에 위치한 재해구호물류센터로 출근해 비상근무를 시작했다. 먼저 재고 현황을 꼼꼼히 점검하고 물품 상태를 확인했다. 산불 피해가 발생한 산청군과 하동군 등 각 지자체의 요청사항에 맞춰 쉘터, 바닥매트, 간이침구, 속옷, 간소복 등 현장 맞춤형 물품을 준비했다. 이후 운송업체에 차량 배차를 요청하고, 지게차로 물품을 상차한 뒤 출고증을 작성하고 각 지자체에 예상 도착시간을 신속히 안내하는 등 일련의 과정을 처리했다.

함양재해구호물류센터에서 희망브리지 윤진혁 매니저가 이재민 지원을 위한 구호물품 수량을 확인하고 있다. 희망브리지

함양재해구호물류센터에서 희망브리지 윤진혁 매니저가 이재민 지원을 위한 구호물품 수량을 확인하고 있다. 희망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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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센터에서 근무하는 윤 매니저의 하루는 단순한 창고 관리가 아니다. 그는 평상시에는 법인모금팀, 구호사업파트와 협력해 이재민 구호키트를 제작하고, 폭염이나 한파 같은 계절성 재난에 대비한 물품 입고 및 배포 일정을 조율한다. 출고가 없는 날에도 물품의 포장 상태, 유통기한, 변질 여부 등을 꼼꼼히 점검하고, 창고 내부 제초, 누수 점검, 동파 방지, 제설 등 전반적인 시설 유지관리까지 책임지고 있다.

윤 매니저는 "구호란 그냥 물건을 쌓아두는 게 아니다.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번 산불 대응은 어느 때보다 힘든 상황이었다. 특히 간소복이나 속옷처럼 사이즈를 맞춰야 하는 품목의 경우, 대·중·소 비율을 고려해 준비해야 해서 시간과 체력 소모가 상당했다. 더욱이 산불이 동시에 여러 지역에서 발생하면서 지자체 요청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긴급한 상황 속에서 그는 본회에 지원을 요청했고, 세탁구호차량 운영을 위해 남부로 내려오던 파주센터의 장영규 매니저가 함양으로 방향을 바꿔 함께 대응에 나섰다. 밤늦게까지 이어진 물품 상차와 지원 업무 속에서도 그는 "누군가 꼭 있어야 하는 자리이기에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은 청송군의 긴급 요청이었다. 물품을 출고한 후, 배송기사가 "청송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양방향이 산불로 막혀 접근이 불가능하다"며 연락해왔다. 윤 매니저는 고민 끝에 회차를 결정했다. "대피소에 물품을 전달하는 것도 제 임무지만, 배송기사님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이었습니다. 물품은 다시 보내면 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죠."

지난 3월 산불 발생 당시, 희망브리지 윤진혁 매니저가 산불 피해 이재민 지원을 위한 긴급 구호키트를 트럭에 싣고 있다. 희망브리지

지난 3월 산불 발생 당시, 희망브리지 윤진혁 매니저가 산불 피해 이재민 지원을 위한 긴급 구호키트를 트럭에 싣고 있다. 희망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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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매니저는 2018년 입사 이래 재해구호 물류 업무만을 맡아왔다. 현재 남부권 전체를 아우르는 함양센터를 혼자 맡아 멀티플레이어로 활약 중이다. 그는 "현장에서 필요한 물품이 제때 도착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계획도 무의미하다"며 "희망브리지의 구호활동은 물류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윤 매니저는 최근 사내 직원 투표로 '공로직원'에 선정됐다. 그는 "제 일을 했을 뿐인데 투표해 주신 것에 감사한 마음"이라면서 "함양으로 지원 와준 파주센터 장영규 매니저와 새벽 늦게까지 혼자 물품 지원에 대응한 박현민 파주센터장이 뽑혀야 했다"며 공을 돌렸다. 윤 매니저는 "입사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구호받지 못한 이가 없도록 하자'고 다짐했다"면서 "이번에 저희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희망브리지를 필요로 하는 분들 곁에서, 모두가 희망으로 가는 든든한 다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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