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물가 안정 대책, 이번엔 다를까

이 대통령 회견에 업계 불안
압박보다 원가 구조 점검해야

"국민의 생활비 부담 완화를 위한 처방을 총동원하겠다."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열린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이 말을 환영하지만, 과연 그 '처방'이란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 걱정되는 마음을 지울 수 없다. 과거 거의 모든 정부가 내놓은 처방이란 것이 '기업 비틀기'와 같은 시장 왜곡 정책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계임사태 이후 기업들이 커피, 빵, 냉동식품, 라면 등 가공식품 53개 품목에 대해 가격을 인상하면서 '밥상물가'가 비상이다. 그동안 기업이 정부의 물가 안정 대책에 협조하는 차원에서 가격 인상을 자제해오다 국정 공백기에 제품 가격을 무더기로 올렸다는 분석이 많다.사진은 10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라면판매대 모습. 2025.06.10

계임사태 이후 기업들이 커피, 빵, 냉동식품, 라면 등 가공식품 53개 품목에 대해 가격을 인상하면서 '밥상물가'가 비상이다. 그동안 기업이 정부의 물가 안정 대책에 협조하는 차원에서 가격 인상을 자제해오다 국정 공백기에 제품 가격을 무더기로 올렸다는 분석이 많다.사진은 10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라면판매대 모습. 202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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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6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가공식품 물가는 1년 전보다 4.6% 뛰었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2.2%)의 두 배 수준이다. 가공식품 73개 품목 중 62개가 전년 대비 가격이 올랐다. 특히 라면(6.9%), 커피(12.4%) 등 서민들이 자주 접하는 품목의 인상률이 눈에 띄게 높았다.

식품업계는 정부의 움직임을 예의주시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취임 직후 회의에서 "라면이 2000원이란 게 사실이냐"는 언급을 내놓자 정부는 곧장 '비상경제점검TF'를 가동한 바 있다. 이런 연장선에서 3일 기자회견 이후 정부가 어떤 '강압적' 대책을 내놓을지 식품업계에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다. 정부로부터 언제 "호출받을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업계 전반에 흐르는 게 이런 분위기를 방증한다.


과거 정부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23년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식품 가격 인하를 공개적으로 주문하자, '물가 상승'의 장본인으로 찍힌 농심과 오뚜기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라면 출고가를 50원씩 내릴 수밖에 없었다.


물가를 안정시켜 서민 경제를 보호하려는 정부의 의지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정부는 가장 손쉬운 방법인 '기업 비틀기' 외에도 더 많은 물가안정 방법을 가지고 있으며, 효과가 다소 늦게 나타나더라도 시장을 덜 왜곡시킬 대책을 마련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실제 당장의 가격 인하만을 목적으로 기업에 일방적으로 책임을 지우는 접근은 한계가 뚜렷하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가 "판매가를 억누르던 시대는 지났다"고 발언하기도 했으니 이번 정부는 조금 다를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최근의 가공식품 가격 인상의 원인은 식품업체들의 원가 부담이 상승한 데 따른 것이다. 원재료 가격은 물론 부자재, 물류비, 인건비, 환율까지 복합적으로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국제 곡물 가격이 다소 떨어졌다곤 하지만, 실제 수입단가에 반영되기까지는 시차가 있고 엔저 속 원화 약세로 수입 비용은 오히려 늘어난 경우도 많다. 원가와 무관한 가격 인하는 결국 품질 저하로 이어지고, 장기적으로는 생산 축소·투자 위축으로 연결된다. 서민 물가를 챙기려다 오히려 먹거리 안전성과 산업 경쟁력을 해치는 셈이다.


정부는 기업을 압박해 라면이나 커피 가격을 낮춤으로써 '정책적 성과물'을 홍보하고픈 유혹에 빠지기 쉽다. 특히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정권일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다소 뻔하지만, 그리고 다소 시간이 걸릴지라도 구조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원론적 비판을 다시 제기할 수밖에 없다. 식품 원가 구조를 점검하고, 물류비·세금 등 기업 부담을 완화해 시장주의적인 물가 인하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해주기 바란다.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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