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기정사실화되면서 재계에선 투자 위축 우려와 함께 경영판단의 원칙 같은 보완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상법 개정안은 3일 법사위 전체회의를 거친 후 본회의에서 최종 처리될 예정이다.
이날 재계에 따르면, 기업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한 대기업 CEO는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경영자는 현재뿐 아니라 미래 환경 변화까지 고려해 유보금을 마련하는데, 배당을 늘리는 게 과연 기업의 영속성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 임원은 "보완됐다기보단 탁상공론 같다. 기업들은 지금 자포자기한 상태"라며 "계속 정치권에서 개정안에 대한 논의를 끝내는 모양새를 보이는데, 민간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세세히 살펴봐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특히 개정안 보완 과정에서도 빠지지 않은 '이사의 충실 의무'에 대한 반감이 매우 크다. 상법이 개정되고 나면 기업의 이사들은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의 이익에 대해서도 충실히 책임을 다해야 한다. 기업 관계자는 "경영진과 주주 의견은 다를 수 있다. 주주는 단기 성과에 대한 많은 배당을 요구할 것이고 경영진은 장기 성과를 위한 투자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은데 상충하는 둘의 선택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불분명하다"고 했다. 재계단체 임원은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 진출하거나 인수합병(M&A) 등 혁신적인 비즈니스를 할 때 경영권을 공격받을 가능성이 있어 망설여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공지능(AI) 개발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정보통신(IT) 업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AI는 집중적인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시기에 상법 개정이 발목을 잡지 않을까 걱정스럽다"며 "물론 주주들이 회사에 피해가 되는 방향을 추구하진 않겠지만, 경쟁에 필요한 투자 등이 너무 늦어질 가능성이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주주의 뜻대로 경영진이 움직이지 않으면 개정된 상법에 따라 소송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업들은 내다보고 있다. 여권은 이를 방지하는 장치로 '경영판단의 원칙'을 법 조항으로 명문화하고 배임죄 폐지 등을 상법 개정 후에 논의해보자는 제안을 내놓은 상태다. '경영판단의 원칙'은 부실 경영을 이유로 제기된 재판에서 법원이 해당 기업 경영진이 경영의 목적으로 내린 판단에 대해 그 고유성과 자율성을 인정해주는 불문법칙이다. 현재 우리 법엔 관련 조항이 없고 판례로만 나와 있다. 기업들은 그러나 현실화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기업 관계자는 "경영판단의 원칙의 명문화가 매우 중요한데 제대로 논의가 될 수 있을지 현재로선 매우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이번 상법 개정이 사측의 부담을 높이는 신호탄이 될까 우려하고 있다. 노란봉투법 등 부담스러운 법안들이 줄줄이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향후 기업들에 불리한 법원들이 줄줄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 각각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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