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재무부가 캄보디아의 민간 금융그룹 '휴이온 그룹(Huione Group)'을 북한과 연계된 사이버 해커조직 '라자루스(Lazarus Group)'가 탈취한 가상자산의 자금세탁 통로로 지목하며 금융 제재를 예고했다. 이는 북한이 제3국 금융시스템을 조직적으로 활용해 불법 자금을 세탁하고 있다는 점을 미국 정부가 처음으로 공식 인정하고 제재에 나선 사례로 주목된다.
2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국(FinCEN)은 최근 캄보디아에 본사를 둔 휴이온 그룹을 북한 해킹조직 라자루스가 탈취한 약 40억달러 규모의 가상자산 자금 세탁 경로로 공식 지목하고, 해당 그룹을 '블랙리스트(blacklist)'에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미국 금융기관과의 거래가 전면 금지되며 달러 결제 시스템 접근도 불허된다.
앞서 지난 5월 미 재무부는 휴이온 그룹을 '주요 자금세탁 우려 금융기관'(Financial Institution of Primary Money Laundering Concern)으로 지정하며 제재를 예고한 바 있다. 북한 해커 조직의 자금세탁 경로로 제3국 금융기관이 공식 제재 대상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 재무부의 이번 조치는 라자루스를 겨냥한 것이다. 미 재무부는 북한 정권과 관련된 라자루스가 제재로 고립된 북한의 자금줄 역할을 하면서 이들이 탈취한 수십억 달러가 탄도미사일과 대량살상무기 개발 등 불법 프로그램 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판단하고 있다.
2009년부터 활동해온 것으로 추정되는 라자루스는 △2014년 미국 소니픽처스 해킹 △2016년 방글라데시 중앙은행 해킹 △2017년 '워너크라이' 랜섬웨어 유포 사건 등 굵직한 사이버 범죄의 배후로 지목됐다. 이들이 탈취한 자금 규모는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는 "2024년 한 해 동안 북한이 탈취한 가상자산 규모는 역대 최고치인 13억4000만달러에 달한다"면서 "이 자금은 핵 및 탄도미사일 개발 등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에 전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FT는 "북한은 이제 국제 사이버 범죄 분야의 주요 행위자 중 하나로 부상했으며 미 사법당국은 북한을 러시아·중국·이란과 함께 세계 4대 사이버 위협국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조치는 라자루스가 해킹을 통해 편취한 가상자산이 어떻게 세계 금융 시스템으로 유입되고 세탁되는지를 미국 당국이 구체적으로 추적하고, 그 실체를 공식 제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휴이온 그룹은 북한 및 국제 범죄조직들이 수십억 달러를 세탁하는 데 활용해온 '사이버 범죄의 장터' 역할을 해왔다"며 "이번 조치는 휴이온의 미국 금융망 접근을 차단함으로써 범죄 자금 흐름 자체를 끊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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