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진료'는 의료계의 고질적인 문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임종을 앞둔 노인에게 각종 검사를 명목으로 과도한 비용을 청구하는 일이 빈번했다. 의사들이 결막이완증, 백내장 등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수술을 권유해 보험업계와 갈등을 빚는다는 기사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급기야 정부는 도수치료, 자기공명영상(MRI) 등 과잉 비급여 항목을 제외하면 보험료를 낮춰주는 '실손보험 선택형 특약'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마이크로소프트(MS)가 발표한 인공지능(AI) 진단 시스템 연구는 과잉진료 문제 해결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MS가 개발한 'MAI-DxO' 질병 진단 시스템은 최대 85.5%의 정확도로 진단하기 어려운 병명을 알아맞혔다. 그것도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 뉴잉글랜드 의학저널(NEJM)에 실린, 진단이 까다로운 질병 사례 304건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다.
'MAI-DxO' 시스템에선 다섯 명(?)의 AI 의사들이 한 팀을 이뤄 진단에 나선다. 첫 번째 AI는 환자 증상을 바탕으로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질문을 거듭하며 병명을 추정한다. 두 번째 AI는 보다 정밀한 진단을 위해 시행해야 할 검사를 추천한다. 세 번째 AI는 첫 번째 AI가 추정한 질병이 과연 타당한지 도전적으로 반박하며 환자가 다른 질병을 앓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네 번째 AI는 이전에 제시됐던 것보다 더 저렴한 검사 방법이 있는지 검토하며, 마지막 AI는 이 모든 과정에서 잘못된 추론이 없는지 점검한 뒤 최종 진단을 내린다.
인간 의사도 동일한 방식으로 진단을 시도했지만, 인간의 정답률은 20%에 그쳤다. AI 의사 그룹은 인간 의사보다 최대 4배에 가까운 정답률을 기록했다. AI와 비교된 21명의 인간 의사는 평균 12년 경력의 가정의학과(일반의)와 내과(전문의) 의사로 구성됐다. 일반의가 폭넓은 진료 분야를 아우르는 반면, 전문의는 한 분야를 깊이 있게 연구한 이들이다. 연구진은 AI가 일반의와 전문의의 장점을 두루 갖췄기 때문에 인간보다 더 우수한 결과를 낼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MS의 연구가 '비용' 문제를 심도 있게 다뤘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의 의료 지출액은 국내총생산(GDP)의 20%에 육박하며, 이 중 최대 25%가 불필요한 비용으로 추산된다. MS에 따르면 매년 수백만 건의 진단검사에 막대한 돈이 투입되지만, 환자 치료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MAI-DxO'는 진단 과정에서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는 검사가 있는지 반복적으로 점검한다. 정확한 진단과 그에 소요되는 비용 간의 균형을 모색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아무리 진단이 정확해도 비용이 지나치게 높다면, 아니면 그 반대로 비용이 저렴해도 정확도가 떨어진다면 환자들은 병원을 찾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연구는 아직 임상 승인을 받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충분한 안전성 시험과 검증이 필요하다. 시스템 완성도가 크게 높아진다 해도 각국의 상이한 의료 시스템과 규제라는 장벽이 남아 있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의료 AI를 보고 있자면, 언젠가 AI가 의사를 대체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MS는 이에 대해 분명히 선을 긋는다. "AI는 의사와 의료 전문가를 보완할 뿐, 환자와 가족의 신뢰를 구축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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