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명신씨(가명)는 오는 10월 아파트 매매계약 잔금 납부를 앞두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달 집주인이 거주 중인 아파트에 대한 매매 계약서를 쓴 뒤 새 임차인이 받은 전세대출로 잔금을 치를 계획이었다. 그런데 정부의 대출 규제 발표로 잔금 조달 계획이 무산됐다.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이 막히면서 남은 잔금 4억원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김씨는 집주인을 설득해 세입자를 먼저 들이기로 했다. 집주인과 세입자가 전세 계약을 맺은 뒤 김씨가 이를 승계해 집을 인수하는 방향으로 튼 것이다. 대신 김씨는 집주인에게 수고비를 일부 지불하기로 했다.
정부가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을 막자, 일부 갭투자자들이 거래 파기를 막기 위해 이 같은 꼼수를 모색하고 나섰다. 새 매수자는 전세보증금을 제외한 금액만 지불하면 조건부 전세대출 없이도 갭투자를 할 수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7일부터 수도권과 규제지역을 대상으로 한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이 금지되면서 갭투자의 길이 막혔다. 소유권 이전 조건부 대출은 세입자가 전세 자금을 대출받는 날 주택의 소유권이 바뀌는 조건으로 이뤄지는 대출을 뜻한다. 쉽게 말해 새 집주인의 잔금일과 세입자의 전세대출 실행일을 같은 날로 맞춘 뒤 당일 받은 전세금으로 기존 집주인에게 잔금을 치르는 것이다. 그동안 갭투자자들이 자금 조달을 위해 흔히 쓰던 방식이다.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잔금 납부를 앞두고 규제가 시행되면서 자금 조달 계획이 뒤엉켰다는 불만 글이 쇄도하고 있다. 한 게시글 작성자는 "지난달 초 매매 계약서를 쓰고 전세 세입자를 구하는 중 대출 규제가 발표됐다"며 "조건부 전세대출이 끊겼는데 현재 수중에는 잔금을 치를 만한 현금이 없어 손이 떨리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계약 파기를 막기 위해 다양한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집주인이 매매 계약 전 세입자와 전세 계약을 체결한 뒤, 새 집주인에게 전세를 승계하도록 하는 매매법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수법을 이용하면 새 집주인은 조건부 전세대출을 활용하지 않고도 잔금 납부가 가능하다. 매도인으로부터 임대인 지위를 승계받는 조건으로 잔금 날 매매대금에서 계약금과 전세금을 제외한 차액만 지급하면 된다. 불법은 아니나 규제를 회피하는 일종의 꼼수다.
다만 매도인의 협조를 얻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매도인이 직접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새 임차인을 위해 먼저 집을 비워야 한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매도인과 매수인의 이해관계가 정확히 맞아떨어져야 가능한 일"이라며 "제도의 빈틈을 활용하는 방식이긴 하나, 매도인이 매수자 잔금 지급 전까지 본인 명의로 전세 세입자를 급하게 구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편법도 결국 임시방편에 그칠 것으로 본다. 정부가 이번 대출 규제를 통해 갭투자 차단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만큼, 이 같은 방안도 막힐 가능성이 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토지거래허가제로 실거주 의무가 있는 지역이 아닌 이상 갭투자가 시장에서 완전히 사라지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번 규제 여파로 시장이 더는 예전 같은 투자는 어렵다는 인식을 갖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리스크를 감내하면서 갭투자에 적극 나설 투자자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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