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장현석씨는 올해 말 가족들과 미국 뉴욕으로 휴가를 떠날 계획을 세우고 연초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가뜩이나 가족 전체가 움직이는 여행이다 보니 비용이 만만치 않았는데, 한창 준비 중에 원·달러 환율까지 1500원 가까이 오르면서 미리 환전해두기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최근 환율이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하반기 더 내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좀처럼 환전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있다.
미국 여행을 위해 환전이 필요한 장씨뿐 아니라 달러로 거래하는 수출입 기업, 해외 증시에 투자하는 서학개미 등 많은 경제 주체가 올해 하반기 원·달러 환율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500원 선을 위협하며 치솟던 원·달러 환율은 상반기 마지막 거래일 연중 최저치인 135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후 이어진 관세 불확실성 우려와 비상계엄 사태 등에 따른 국내 정국 불안 파고를 넘어, 환율 레벨을 지난해 10월 중순(11일 1349.5원) 수준으로 되돌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하반기 원·달러 환율의 추가 하락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는 하단을 1300원 선까지 내리기도 했다. 추가 하락을 점치는 근본적인 이유로 미국 예외주의 약화와 글로벌 투자 주체의 탈달러 모색을 꼽았다. 장기 선행지표 부진 조짐, 통상 환경 불확실성 장기화 등으로 미국의 경제 활력 위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의 미국 신용등급 하향 조정 역시 미국 자산에 대한 신뢰도를 약화시키며 달러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봤다.
이에 따라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하반기 완만한 약세 흐름을 나타낼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예외주의 둔화 전망 등에 올해 상반기 달러인덱스는 10.8% 하락했다. 이는 달러 위상에 대한 우려로까지 번졌다. 한 외신의 경제학자 49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0% 이상이 달러의 안전자산 역할 약화를 우려했다.
이상원 국제금융센터 외환분석부장은 "올해 하반기 미국 예외주의 약화 등에 의한 약달러 여건이 유지되면서 원·달러 환율도 약달러에 연동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그간 강달러를 견인한 미국 예외주의 흐름을 지지한 건 정부의 재정지출"이라며 "신용등급 강등 이후 재정지출 우려가 오히려 미국 자산에 대한 걱정으로 연결되고 있는 만큼, 달러화의 추가 약세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소매판매, 국내총생산(GDP) 등 부진한 경제지표를 고려하면 현재의 약달러 베팅이 바닥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새 정부의 경기 부양 기대감도 하반기 원화 강세 지속 요인으로 꼽혔다. 지난해 말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해소됐고, 새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에 따른 펀더멘털 개선 기대 역시 커지면서 하반기 원·달러 환율 하락에 힘이 실릴 것이란 전망이다.
그간 숨죽였던 국내 투자 확대도 원화 강세에 뒷받침이 될 것이라고 봤다. 권 연구원은 "신정부 출범 이후 주요 기업이 대규모 국내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며 "해외 자회사가 가지고 있는 내부유보 잉여금이 국내로 들어올 경우 추가로 환율 레벨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2023년 초 이중과세 개편으로 해외 유보금의 본국 송환이 진행될 당시 환율은 1200원대 중반까지 빠르게 하락한 바 있다. 새 정부 출범과 맞물린 주가 상승과 외국인 자금 유입 역시 환율 추가 하락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에 힘을 싣고 있다.
아시아 통화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특히 대만 보험사들의 환헤지 수요에 달러 대비 대만달러화 가치가 3년 만의 최고치로 상승한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경우 프록시(대리) 통화로 분류되는 원화 역시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어서다. 이 부장은 "향후 대만 달러 변동성의 파급 효과를 잘 살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연말께 원·달러 환율의 반등 가능성 역시 있어, 환전을 비롯해 환율 하락에 베팅한 투자 등의 타이밍을 잘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유미 키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3분기까지 원화 강세가 이어지며 원·달러 환율이 1300원 초반까지 하락할 수 있다"면서도 "인공지능(AI) 산업을 중심으로 한 미국 민간 부문의 투자 사이클이 여전히 유효한 가운데 감세와 규제 완화 등에 따라 연말께 미국 경기 회복 기대가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주원 대신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기는 장기적으로 부양 정책에 힘입어 개선될 것으로 본다. 달러 자산에 대한 신뢰 역시 다시 회복할 공산이 크다"며 "정책 시행을 위한 재정 여력에 의구심이 남아 있어 아직 이를 기대하기는 이른 시점이나, 올해 4분기 예산안 수립으로 불확실성이 해소될 경우 반등이 가능할 전망"이라고 봤다. 이 경우 3분기 저점 확인 후 4분기 반등하는 흐름이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밖에 국내기업의 미국 현지 생산시설 확대가 발 빠르게 진행될 경우 달러 환전 수요가 강해지며 원·달러 환율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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