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퇴직연금이 노후소득보장제도 역할을 하지 못하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국가가 책임과 규제를 강화하면서 공동으로 위험을 분담하는 네덜란드 방식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국민연금연구원은 최근 공개한 '퇴직연금의 유형화 및 유형별 퇴직연금제도 비교 분석' 보고서에서 "2005년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으로 도입된 우리나라의 퇴직연금은 2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노후소득보장제도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며 "퇴직연금의 발전을 위하여 다시 새롭게 제도를 재편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퇴직연금 가입률은 53.2%에 그쳐 퇴직연금을 의무가입으로 볼 수 없는 구조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연금으로 수령하는 비율은 2023년 기준 10.4%에 불과해 퇴직연금은 노후소득보장제도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구팀은 세계 각국의 퇴직연금제도를 '적용 범위(의무/자발적 가입)'와 '노후소득보장 역할 정도(위험부담 주체/국가 규제)'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총 8가지(A∼H) 유형으로 분류했다. 다만 이 중 D, E, F, H 유형은 실제 사례를 찾기 어렵거나 국내 퇴직연금 제도 발전에 참고하기 어려워 제외됐다.
A 유형인 스위스는 '국가책임-의무가입' 모델이다. 국가(연방의회)가 법으로 최저이율(2024년 1.25%)과 연금 전환율(2024년 6.8%)을 정해 실질적인 DB(확정급여)형 제도로 운영한다. 스위스의 퇴직연금은 공적연금의 특성이 매우 강한 제도로 노령뿐 아니라, 사망 및 장애에 대한 보장도 이루어진다.
B 유형인 네덜란드는 '노사 공동 책임-준(準) 의무가입' 모델이다. 산업별 노사 단체협약을 기반으로 운영되며 2022년 기준 근로연령인구의 약 93%가 가입된 상태다. 최근 DB형의 지속가능성 문제로 근로자 간 위험을 분담하는 CDC(집합적 확정기여) 형태로 전환 중이다. 연대기금 설립을 의무화해 수급권을 보호하는 등 연대의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C 유형인 호주는 '개인책임-의무가입' 모델이다. 모든 투자 위험은 근로자 개인이 부담한다. 정부는 제도 내용보다 시장 환경 규제에 초점을 맞춘다. 정부 관리하에 운영되는 디폴트옵션(MySuper)을 통해 시장 경쟁을 유도, 수수료를 낮추고 수익률을 높였다.
G 유형인 영국은 '개인책임-자발적 가입(선택적 탈퇴형)' 모델이다. 2012년 자동 가입제도를 도입해 가입률이 79%(2021년)로 증가했다. 저소득·중소기업 근로자를 위해 국가 주도 퇴직연금(NEST)을 운영한다.
보고서는 "퇴직연금을 노후소득보장 강화의 측면에서 발전시키고자 결정한다면 스위스 혹은 네덜란드 형태로의 발전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며 "다만 인구고령화 및 저성장의 상황에서 고용주의 과부담 등을 이유로 DB형 퇴직연금에서 DC형 퇴직연금으로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최저이자율 등 연기금이 책임을 다시 부담하는 스위스 형태로의 개혁은 수용성이 매우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위험부담의 주체까지 고려할 경우, 네덜란드 CDC형태로의 개혁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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