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시대가 장기화하면서 가성비를 앞세운 PB(자체브랜드)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과거 PB 상품은 저렴하지만, 품질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합리적인 가격에 품질까지 갖춘 상품들이 잇달아 출시되면서 소비자 인식도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가파른 매출 성장세에 힘입어 PB 상품은 유통업계의 핵심 전략 상품으로 부상하고 있다.
28일 BGF리테일에 따르면 이달 1~22일 편의점 CU에서 판매하는 라면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8% 증가했다. 특히 CU의 PB 상품인 '득템라면'은 무려 37.5%의 매출 증가율을 보였다. 해당 라면은 개당 480원으로, 시중 봉지라면과 비교해 절반 가까이 저렴하다.
CU는 이처럼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PB 상품으로 꾸준한 매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PB 상품의 전년 대비 매출 신장률은 ▲2022년 16% ▲2023년 17.6% ▲2024년 21.8%로 나타났다. 올해(1~4월)도 18.8%를 기록 중이다.
PB 상품은 유통업체가 제조사와 직접 계약을 맺고, 자사 브랜드를 붙여 판매하는 방식이다. 유통업체는 경쟁력 있는 중소 제조사를 발굴해 함께 제품을 개발하고, 자체 품질 기준을 통해 검증한 뒤 시장에 출시한다. 기획부터 생산, 유통까지 모든 과정을 독자적으로 운영하다 보니 마케팅 비용과 중간 유통비가 절감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대형마트 역시 PB 상품의 성장세를 체감하고 있다. 특히 이마트는 국내 대형마트 중 PB 브랜드를 가장 활발히 운영하는 곳으로, 대표 브랜드인 '노브랜드'와 '피코크'만 해도 각각 약 1500종, 700여 종의 상품을 취급하고 있다. 최근에는 품목 다양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달에는 2만9980원의 '노브랜드 편안한 운동화'가 출시됐으며, 하이볼 전용 위스키 '저스트 포 하이볼(700mL)'도 598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식당에서 판매하는 소주 1병(360mL)이 약 5000원인 점을 고려하면 용량 기준으로 위스키가 소주보다 저렴한 셈이다.
유통업계가 PB 상품 확대에 주력하는 배경에는 변화된 소비자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닐슨아이큐(NIQ)가 최근 발간한 '2025 PB 리포트'에 따르면 한국 소비자의 77%는 PB상품을 일반 브랜드의 대체재로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가격 대비 품질이 괜찮다'는 이유로 구매한다는 응답도 전년 대비 증가했다. PB상품이 더 이상 '싸기만 한 대체재'가 아닌 '합리적 선택지'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서울 마포구에서 자취하는 구초영씨(31)는 "휴지나 물티슈 같은 생필품은 좀 더 저렴한 PB 브랜드를 사용하게 되는 것 같다"며 "특히 한번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다 보니 굳이 비싼 제품을 고집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만 충족되면 굳이 브랜드에 집착하지 않고 가격이 합리적인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며 "패션 아이템처럼 브랜드 이미지가 중요한 제품은 여전히 제조사 브랜드(NB)를 선호하지만, 실용성이 중요한 생활용품의 경우 PB상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더 높게 나타난다. 편의점이나 할인마트에서 PB상품이 잘 팔리는 이유도 이와 연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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