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원화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진 가운데 비기축 통화인 우리나라의 화폐를 사용한 코인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 역시 곳곳에서 나온다. 전문가들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된다 하더라도 국제 결제시장에서 원화의 낮은 지위와 이미 국내에 잘 구축된 결제환경, 금융당국의 규제 등으로 인해 사업 확대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IB) HSBC는 전날 보고서를 내고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미래가 그렇게 밝지만은 않다고 분석했다.
스테이블코인이란 달러와 같은 특정 자산과 연동해 가치 안정성을 추구하는 가상자산이다. 달러 가치와 일대일 연동된 테더(USDT)와 USD코인 등이 대표적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최근 사용 범위가 가상자산 시장을 넘어서 가치 저장 수단으로 사용되거나 기존 결제시스템과 결합해 일상적인 거래에서도 활용되는 등 확장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원화 스테이블 코인 도입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최근 국내에서도 관심이 커졌다. 국회에서도 관련 법이 발의된 상황이다.
이처럼 국내외적으로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관심이 커지지만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확장성 한계는 명확하다고 HSBC는 지적했다. 국내에서는 이미 신용카드 사용률이 매우 높아 침투율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원화가 기축통화가 아닌 만큼 해외에서의 사용 가능성도 높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의 규제 강화 가능성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초기 발행권은 은행 등 공신력 있는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부여해야 한다고 본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누구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게 한다면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예상치 못한 충격 발생 시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어서다.
한은은 최악의 경우 뱅크런과 비슷한 코인런(대규모 코인 인출 사태)이 발생할 수 있다고 봤다. 한은은 지난 24일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의 가치 안정성과 준비자산에 관한 신뢰가 훼손될 경우 디페깅(스테이블코인의 가치가 연동 자산의 가치와 괴리되는 현상)과 대규모 상환 요구가 발생하면서 '코인런'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단기자금시장 충격 및 은행 유동성리스크 등을 통해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할 수 있다.
또한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스테이블코인은 관련 제도 및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술적 오류 발생과 범죄 악용의 가능성 등 다양한 결제 및 운영 리스크가 내재됐다고 봤다. 비기축통화국에서 외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경우 환율 변동성 및 자본 유출입 확대 등 외환 관련 위험도 증가할 수 있다. 한은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 확산 시 금융안정 및 경제 전반에 잠재적인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한은을 비롯한 정부 및 금융당국이 스테이블코인 도입과 관련해 다각적이고 철저한 점검을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식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스테이블 코인이 디지털 경제의 새로운 민간화폐로 부상하며 통화제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특히 핀테크 기업이 발행하는 스테이블 코인은 디지털 무기명증서 방식으로서 민간 발행 화폐의 단일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결제은행(BIS) 역시 세계적인 스테이블코인 확산 현상에 경고를 날렸다. BIS는 오는 29일 발간 예정인 연례보고서 초안에서 스테이블코인이 통화 주권을 약화할 가능성과 투명성 문제, 신흥국에서의 자본 유출 위험 등에 관해 우려를 보였다. BIS는 "스테이블코인은 안정적인 화폐의 역할을 충족시키지 못하며, 규제가 없어 금융 안정성과 통화 주권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스테이블코인이 가져올 불안을 막으려면 각국 중앙은행이 중앙은행 준비금과 상업은행 예금, 정부 채권을 통합한 토큰화된 '통합 원장'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우려에도 관련 업계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가능성을 높게 보는 분위기다. 이미 은행들은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합작법인을 설립해 공동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사업모델을 구상 중이다. 핀테크(금융+기술)와 게임 업계를 중심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시장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상표권 출원도 이어지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은 시기의 문제일 뿐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며 "문제는 스테이블코인 사업이 국가 경제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오히려 금융시장의 혼란만 불러올 수 있어 이에 대한 대비책도 철저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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